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녀녕 Jun 27. 2024

중년은 걱정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

걱정거리는 누구나 안고 살아간다

[여름: 제12부]



나의 중년의 모습은 어떨까 막연한 상상을 해보았을 때 세월에 흔적으로 주름졌지만 별다른 걱정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멋진 사람을 그리곤 했다. 한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럽게 내면이 성숙해지고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삶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어른은 버거운 일들을 쉽게 해결하며 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아주 대단한 나의 착각이었구나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그마한 수면 클리닉에서 원무 관련 일을 한 적이 있다. 보통 수면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신체질환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상당수가 심리적인 문제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사실 이곳에 근무를 하기 전에 수면 관련 병원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잔잔하여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많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들이 오곤 했다. 그리고 연령층은 어린아이부터 중년, 노인들로 다양했다.  어린아이들은 마음이 여리기도 하고 성장기에 작은 경험도 큰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청년들 역시도 다양한 사회경험으로 부딪혀 가는 과정에서 힘듦으로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노인들은 몸이 약해지기에 마음 또한 쇠약해져 가기 때문에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걱정 없는 중년들이 힘듦을 토로하며 방문하는 모습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내가 떠올렸던 걱정 없는 어른은 어디 갔단 말인가.


각자 다른 사연을 갖고 있겠지만 어머니 혹은 아버지 나이로 추정되는 분들이 상담을 하고 약 처방을 받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세상이 나에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직책이 올라가거나 주변에 이야기를 하자니 주제가 무겁거나 약점이 될 수도 있기에 점차 주변 사람들에게 터놓기 어려워진다. 그저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해결하려고 애를 쓰거나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힘듦에 대해 상담을 한다.


이런 모습을 통해 걱정이라는 것은 말끔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세상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그러다 문득 우리 부모님은 어떤 말하지 못하는 걱정과 어려움을 안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10대, 20대를 넘어올 때 무덤덤하게 해냈던 혹은 해낸 것 같던 부모님은 그 당시 어떤 걱정과 생각을 갖고 지내왔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 한 켠이 아렸다. 부모이기 전에 그들도 사람이기에 힘든 순간이 있었을 텐데  내가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나 홀로 이겨내 왔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부터였는지 예전에 힘든 일이나 걱정을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현재 말을 많이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굳이 큰일이 아니고서야 무던히 해결하려고 한다. 이렇게 글을 적으니 많이 철이 든 사람 같네 하며 피식 웃음을 짓게 되었다.

누구에게 걱정을 굳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소중한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배려의 마음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이전 23화 당신의 태어난 요일은 무엇인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