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어느 래퍼의 노래가 떠올랐다. 무명 시절 꿈을 위해 밤새 음악 연습을 했다고 한다. 늦은 시간 음악을 배우러 가는 길, 고된 마음에 4호선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이 풍기는 술 냄새마저 부러울 지경이었지만 자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살았지만 그 덕분에 자신은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뜬금없이 출근길에 이 노래가 떠오른 까닭은 버스 창 밖 풍경 때문이었다. 해마다 이 근방에서 크게 열리는 불꽃 축제. 도로변에 사람들이 가득이다. 흥겨운 얼굴로 지나치는 사람들. 나는 잠시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노려봤다.
‘죽상이구만.’
교대 근무를 하면 다들 놀러 가는 휴일에도 밤낮으로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는 건 시차가 아주 다른 먼 나라에 홀로 사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친구들이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술 한 잔 하고 있는 사진을 작업복을 입고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내 시간을 즐겁지 않은 일에 허비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시간을 견디는 걸까.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것뿐일 테다. 어쩌면 내가 사는 게 재미없다고 느끼는 까닭도 이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절박함도 없이 그저 끌려가듯 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항상 끌려다니는 시간을 살았다. 어른들에게 혼나기 싫어 적당히 공부하고, 배곯기 싫어 취업을 했으며, 마지못해 출근을 하고 있다. 나는 이 시간에 끌려왔으므로 마치 귀양이라도 온 듯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시차에 사는 사람들, 더 나아가 더 멋져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내 시간의 주체가 되고 싶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러지 못했으므로 이제는 그 방법조차 모르겠을 지경이지만. 일단, 오늘 하루 땡땡이를 쳐보는 건 어떨까.
요컨대 유별나게 출근하기 싫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