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보면 사람과 기계는 닮은 점이 많다. 인간 형태를 한 인공지능 로봇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기계도 사람처럼 그날마다 컨디션이 다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불량품을 잔뜩 내뱉는 날이 있고, 막힘없이 양질의 제품을 뿜어내는 날도 있다.
“일단, 가서 그리스 좀 발라볼래?”
(Grease: 기계 내부에 마찰을 감소시켜 부품의 수명을 연장시킬 목적으로 바르는 윤활제)
선배는 어딘가 지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기계님의 기분이 매우 저조한 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도 별 소용이 없을 때였다. 이 상황에서 그리스를 바르는 일이란 도무지 화가 풀리지 않는 여자친구를 달래주는 일과 비슷하다. 붙잡고 애원이라도 한단 이야기다. 나는 ‘이젠 제발 화 좀 풀어.’라는 느낌으로 그리스를 바르러 갔다.
두터운 쩜피 장갑을 끼고 질퍽한 그리스를 푹 떠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색깔도 갈색인지라 꼭 소똥을 퍼올린 기분. 나는 이 매끈한 소똥을 정성껏 펴 발랐다. 그리스로 선을 그리고, 면을 채우다 보니 문득 화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 소똥의 아티스트. 보통 예술에는 철학이 담긴다지 않는가. 나는 정말 예술가라도 된 양 그리스에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기계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 걸까. 살아가기 위해서다. 일을 통해 동작에 필요한 기름을 벌어들인다. 때로 마모되지 않도록 윤활제를 바른다. 그저 조금 더 오래 존재하기 위해 반복되는 부하를 견뎌낸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돈을 번다는 건 살기 위해서다. 동시에 시장에 각종 콘텐츠들과 맛집, 여행 등을 소비하는 까닭은 반복되는 삶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다. 단지 살아가기 위해 사람은 고통을 견딘다.
부하를 견디다 보면 언젠가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 기계는 마모된 부품을 교체하거나 그냥 폐기시켜 버린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 일부가 마모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체할 수도, 고장 난 기계처럼 미련 없이 버릴 수도 없는데 말이다.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스 다 발랐나?”
무전기로 선배가 나를 찾았다. 퍼뜩 잡념에서 벗어나 곧 가겠다는 응대를 했다. 일이 고되니 시답지 않은 생각으로 현실을 도피하던 중이었다. 그리스를 바르며 의식의 흐름대로 떠올리는 개똥철학. 아니, 소똥 비슷한 것을 들고 있으니 소똥철학이라 해야 하나.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상념에서 벗어났다. 서둘러 쩜피 장갑을 벗어던지고 운전실로 향했다. 제발 좀 제대로 작동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