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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Oct 26. 2024

황구야 제발 도망치지 마

새벽 1시. 차에서 어기적거리며 내렸다. 주차를 해놓고 유튜브 영상 하나 보고 집에 들어간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고 만 까닭에서였다. 얼른 들어가서 자야지. 차에서 불편하게 잤더니 뒷목이 뻐근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골목길로 들어섰다.

“으르르”

낮게 울리는 소리. 내 무릎 언저리 정도 돼 보이는 개였다. 맞은편에서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듯 잔뜩 인상을 쓴 채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무려 5마리가 말이다. 순식간에 잠기운이 달아났다.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차까지 뛰어 도망칠까. 거리가 애매해서 그전에 따라 잡힐 거 같은데.’

개는 뒤돌아서 도망가는 순간 쫓아가서 물려는 본능이 있다고 들었다. 그럼 맞서 싸워야 하나. 그때 언젠가 봤던 야생 동물을 마주했을 때 대처 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몸을 최대한 부풀려서 소리를 지르며 다가서니 오히려 당황한 짐승이 뒤꽁무니를 치는 장면이었다.

‘이거다.’


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지르며 개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왈! 왈! 왈!”

나는 왜 개 짖는 소리를 냈을까. 개들은 새벽 1시에 개 짖는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미친 남성을 슬그머니 피해 갔다.


“휴, 다행이다.”

위기가 지나가고 날뛰던 심장이 가라앉을 때쯤 개처럼 짖었다는 창피함이 몰려왔다. 문득 나를 이런 처지로 몰고 간 개들이 증오스러워졌다.

“저거 다 총으로 쏴 죽여야 해. 다른 사람도 분명 물려고 달려들걸?”

때로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놀라 뒤늦게 생각했다. 죽이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이전에 내게 으르렁댔던 또 다른 강아지 한 마리가 생각났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논밭 사이에 있는 대학 다니려 그러니?"

라고 한 적이 있다. 공부하지 않는다면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 깊숙이 시골에 위치한, 듣도 보도 못한 대학에 갈 거란 선생님의 농담 섞인 경고였다. 그 말을 농담으로만 받아들여서일까. 내가 다니는 전문 대학교 앞에는 드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여름밤만 되면 밤공기에 취한 학생들보다 개구리가 더 시끄러운 시골 동네였다. 그런 시골 동네라서 그런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게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있었다. 사실 어느 집에서 키우는지도 몰랐다. 목줄이 새것인 걸 봐서 주인이 있을 거라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주인이 누구든,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게 민폐던 아니던 그 개는 우리 학교 마스코트였다. 어미와 판박이인 새끼 하나. 사람을 무척이나 따르는 아이들이었다. 누런 털 빛깔을 뽐내며 특유의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는 걸 보면 쓰다듬지 않고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모두들 이 아이들을 이뻐해서 그런지 학교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한 번씩 수업이 끝나고 학교 건물 안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애들을 보면 사람들이

"개팔자가 상팔자여."

하고 쓰다듬고 가곤 했다.

      

주인 있는 개를 함부로 이름 지어주기도 뭣해서인지 사람들은 '강아지', 혹은 '애기들'이라고 지칭했다만 난 남몰래 황구라는 이름을 얘들에게 지어줬다. 누군가 색깔이 누러니까 백구 대신 황구로 지은 거야? 라며 내 미적 감각에 의문을 제기할지라도 이 만큼 기막힌 게 없다고 생각했다.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 새끼를 보고

"우리 퐝구, 신났네~."

라며 '황구'를 '퐝구'라고 조금 발랄하게 부르곤 했다. 이 발음은 '방귀'와도 비슷하다. 똥이나 방귀 얘기 하나로 까르륵 거리는 아이들 특유의 명랑함이 떠오르지 않나? 똥방구리 황구. 이만큼 어울리는 이름이 없다 싶었다.


발랄한 황구와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군대에 갔다. 전역하고 복학하려 돌아오니 그제야 황구가 생각났다. 그동안 잘 지냈을까? 아직 볼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은근히 황구와의 재회를 기대했다. 그리고 어느 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길가에 서있는 짜리 몽땅한 다리를 가진 누런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좀 크긴 했지만 틀림없는 황구였다.

"오, 퐝구~.”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친근하게 부르며 다가갔다만 황구의 반응은 그렇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서자 으르렁 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한 거다.


“황구야, 도망가지 마.”

안타까운 마음에 말해봤지만 황구는 이를 들어내보였다. 알아보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만 이런 반응이라니. 먹이로 살살 달래 보려 해도 도무지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항상 같이 다니던 어미가 없다는 것, 더 이상 학교의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는다는 것에서 황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나를 멀리하는 황구가 서운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취업의 문턱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황구를 잊고 지냈다.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를 보다 문득 황구가 떠올랐다. 그 책에선 ‘회피형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회피형 인간은 내재된 상처를 안고 있다. 그들은 자기 방어 기제로서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려 한다. 그들은 책임이나 속박을 싫어하며 상처받는 일에 예민하다. 실패를 특히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꺼린다. 속마음을 쉽사리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때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기도 하기에 ‘믿고 걸러야 하는 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황구와 회피형 인간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도망치려 하고, 때로 이를 드러내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 둘은 믿고 걸러야 하는 존재일까. 글쎄, 어쩌면 우린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떠돌이 개들도, 황구도, 회피형 인간들도 또다시 상처받는 게 두려운 존재일 뿐이다. 개처럼 짖던 나도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으르렁 거림을 너무 미워하지만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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