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비 Oct 26. 2024

세상 절반이 끔찍해도 뼈대만 좋다면

“형도 그렇지 않아요?”

퇴근하는 길, 직장 동료를 붙잡고 한참 무언가를 쏟아냈다. 같이 일하는 다른 친구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동의를 구하는 말에 이야기를 듣던 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을 테다. 마지못한 호응에 그다지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씩씩거리던 나는 집에 돌아와 그 친구의 못난 점을 좀 더 잘 설명하기 위해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꽤 공을 들여 글 하나를 완성하고 어딘가 뿌듯한 마음으로 읽어봤다.


글을 읽다 별안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곧바로 노트를 찢어 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만 그건 한 사람을 낱낱이 파고들어 허점을 찾아내며, 어떤 식으로 상대를 비난해야 효과적인지 고심한 글이었다. 나는 이와 비슷한 무언가를 이전에 몇 번씩 본 적 있었다.

     

공장에 취업하려는 한 학생이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아직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한 학생은 학교에서 소개받은 회사로 갔다. 고된 일, 만족스럽지 못한 급여, 어떤 이유로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들. 학생은 그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기껏 추천해 준 곳을 그렇게 근성 없이 나와버리면 어떡하니. 앞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안 받는다고 하면 후배들 앞길 막은 꼴 아니겠니. 학교로 돌아온 학생은 사회 부적응자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미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첫 직장에서 서투른 만큼 열심히 하여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자 했다. 어느 날 친구는 땀범벅이 되어 이층 휴게실로 돌아왔다. 그때, 아래층에서 친구의 이름이 조그맣게 들려왔다. 친구는 자신도 모르게 숨죽여 이야기를 엿들었다. 무슨 이야기였을까. 땀에 젖은 옷이 유난히 친구의 몸통에 차갑고 축축하게 달라붙어왔다고 한다. 그때의 서늘함을 친구는 꽤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고 한다.          

돈 몇 푼 빌려간 뒤 끊기는 관계, 너니까 알려준다며 같이 물건 팔아보자고 다가오는 지인. 일일이 말하기도 잡스럽지만 세상은 썩 좋은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자신 또한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나 역시 자기 이득을 위해, 단순 재미를 위해, 심지어 아무런 이유가 없을지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매기 스미스의 『좋은 뼈대』라는 시가 있다.

    

세상은 적어도 절반은 끔찍한 곳, 이조차도 실제보다 적게 어림잡은 것.

비록 내 아이들에게는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

새들이 많은 만큼 새에게 던져지는 돌도 많고

사랑받는 아이들이 많은 만큼 부러지고, 갇히고, 슬픔의 호수 밑으로 가라앉는 아이도 있다.

인생은 짧고, 세상은 적어도 절반은 끔찍하며,

친절한 낯선 이들이 많은 만큼

너를 파괴하려는 자도 많을 것이다.

비록 내 아이들에게는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세상을 홍보하는 중이다.

뛰어난 부동산 중개인이라면 진짜 거지 소굴 같은 집을 보여 줄 때 경쾌하게 재잘거릴 것이다.

그 집의 좋은 뼈대에 대해.

그러면서 말할 것이다.     

"이곳은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그렇죠? 당신이라면 이곳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요."     

 -매기 스미스『좋은 뼈대』 중


세상은 아주 친절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거지 소굴 같은 곳 일는지도 모른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나 또한 각다귀 같은 존재가 돼야만 할 것만 같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세상이 서로가 서로를 뜯어먹기 바쁜 곳이라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왜 아직까지 허물어지지 않는 걸까. 매기 스미스 말처럼 세상, 우리 모두가 좋은 뼈대를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탁월한 뼈대를 거지꼴로 내버려 두는 건 지나치게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모두 좋은 뼈대를 가지고 있으니 그걸 가꾸는데 힘써야 할 테다.


단단하게 살고 싶었다. 누군가 부딪혀 와 나를 깨트리지 못할만큼 말이다. 나는 어느 순간 조금 단단해졌다. 동시에 날카로워졌다. 내가 종이를 구겨버린 까닭은 그 얄팍한 단단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이전 11화 꾸깃한 6천 원에서 느끼는 가난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