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저녁 식사 후 4~5시간쯤 지났을 때. 머릿속에 슬그머니 한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야식.
자기 관리에 은근 신경 쓰는 편인지라 애써 그 유혹을 떨쳐내보고자 했다만,
"끝나고 햄버거 먹으러 갈래?"
동시에 회유에 약한 편인지라. 같이 일하는 형 말에 홀라당 넘어가고 만다. 아, 원래 뭐 안 먹으려고 했는데 형 때문에 먹어주는 거예요.라고 지껄이며 장소를 물색해 봤다. 우리는 퇴근 후 맥도널드로 향했다.
"혹시 애들 데리고 와도 괜찮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형이 물었다. 그에겐 각각 5살, 8살 난 딸아이들이 있다.
"11시가 넘었는데 애기들 괜찮아요?"
"괜찮아. 내일 둘 다 휴일이 이기도 하고. 애들도 좋아할 거야."
아이들을 떠올리는지 밝게 웃는 얼굴을 보고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트 입구에서 잠시 차를 데고 기다리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시간에 회사 동료와 술집이 아닌 햄버거 가게로 향하다니. 그것도 그의 딸아이들과 함께 말이다. 나는 나보다 대체로 시간이 많이 앞서거나 뒤서는 사람을 대할 때 낯을 가리곤 한다. 무엇을 화젯거리로 해야 할지, 어느 정도 예의를 차려야 할지를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회사 형의 시간은 나보다 십이지를 기준으로 한 바퀴 정도 앞선다. 그의 딸들은 두 바퀴 가량 뒤선다. 그런데도 딱히 불편할 거 같진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음주를 전혀 하지 않는다. 주말마다 교회에 가며,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한다. 성실함에 농도가 있으면 그는 무척 진한 사람이다. 시간도 농도도 다른 우린 무엇 때문에 가족들이랑 야밤에 햄버거를 먹으러 갈 정도로 섞여든 걸까.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고 있는데 뒷좌석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들이 거의 뛰어들다시피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삼촌!"
"삼촌, 빨리! 빨리 출발해요!"
잔뜩 흥분해 있는 아이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애들 엄마 몰래 나왔거든."
뒤따라 타는 형이 부연 설명을 해줬다.
"엄마는 자고 있어서 뒤꿈치 들고 살금살금 해서 몰래 나왔어요!"
"비밀이야!"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해치운 양 아이들이 덧붙였다.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아이들은 모험 중이었다. 어머니가 잠든 틈에 몰래 밤 11시에는 자야 한다는 규칙, 밤에 간식을 먹지 않는다는 규칙 등에서 일탈하여 햄버거를 해치우러 가는 모험. 와, 그거 재밌겠네. 나까지 괜히 동참하는 기분이 들어 재빨리 차를 출발시켰다.
햄버거를 먹으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난센스 퀴즈를 내다가, 반쯤 나온 자기 앞니 이야기를 하다가, 삼촌은 햄버거 몇 개 먹냐는 질문을 하는 등 맥락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아이들은 자꾸 꺄르륵거리면서 빠져나간 자기 앞니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앞니 빠진 웃음. 이 부녀들은 웃는 얼굴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큰 아이는 한창 떠들어대며 무려 햄버거와 콜라 하나, 감자튀김 둘을 해치웠다. 성공적인 모험인 듯했다. 그녀가 보상으로 아이스크림을 요구했기에 우린 소화도 시킬 겸 조금 멀리 떨어진 편의점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가는 길에 쉬지 않고 폴짝거렸다. 그런데 작은 아이가 언니를 따라가다 풀썩 넘어졌다. 곧바로 몸을 일으켰지만 일어서진 않았다. 아빠를 바라보며 울어야 할지 말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팔을 벌렸다. 얼른 일어서 안기라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벌떡 일어서 우다다 아빠 품에 안겼다. 그날 아이들의 모험에서 나는 그의 미소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에이리 프롬 『사랑의 기술』을 읽다 보면 그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에이리 프롬은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자기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는 나의 어머니로서 '어떤 악행이나 범죄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 못한다.'라고 스스로 말해야 한다. 동시에 나는 나의 아버지로서 '네가 잘못을 저지르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내 마음에 들고 싶다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이번 생을 처음 살아가보고 있으므로 대체로 처음 걷기 시작한 아이처럼 서투를 때가 많다. 걷다 보면 당연히 넘어질 때도 많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어버이처럼 미소 지어주고자 한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감싸 안아주되 동정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길 요하되 다그치지 않는다. 팔을 벌려 넘어진 아이를 기다리는 어버이처럼 나를 대하고자 한다. 그렇게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다 보면 나는 또 다른 완벽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미소 지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