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는 아프지만 군고구마는 맛있어

by 좋아해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찜질방에 갔다. 고구마를 가져가면 숯불에 구워 먹을 수 있고, 삼겹살을 시키면 숯에 초벌구이를 해주어서 밥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도 좋아하며 땀을 주룩주룩 내며 찜질을 즐겼다. (땀을 내고 바깥으로 나오면 기온 차이 때문에 수증기를 내뿜는 초능력자가 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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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가마를 이용해서 열을 내는 찜질방이었고 바닥이 나무판자로 되어 있어서 양말을 필수로 신어야 했다. 나무판자의 가시가 살을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부주의함 때문일까, 어른들의 굳은살 덕분이었을까. 첫째는 손바닥에 가시가 박혔고 둘째는 발 날에 가시가 박히고 말았다. 어른들은 아무도 가시가 박히지 않았다.


첫째는 가시가 박히자마자 바로 발견해서 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둘째는 꽤 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와서야 발견을 했는데, 상당히 큰 가시가 박혀 끝 부분이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으이구 진짜. 엄마가 가시 박힐 수 있으니까 발 끄시고 다니지 말라고 몇 번 말했어? 그리고 박혔으면 바로 말해야지 왜 이걸 참고 있어.”

“따끔하길래 그냥 따끔한 건가 싶었지.”

“따끔하면 가시에 찔린 거지, 그냥이 뭐야. 그냥이.”

아마 둘째는 찜질방에 가득 찬 사람들 앞에서 가시에 찔린 발을 꺼내보이고 싶지 않았을 거다. 더군다나 엄마 잔소리를 무시하고 벌어진 사태니, 더 큰 잔소리로 돌아올 것을 예상했을지도... 아니면 진짜 둔한 거였거나. 어쨌든 가시의 머리 부분이 살짝 나와있으니 족집게로 잡아 뽑으면 될 터였다.


“아!”


뽑혀 나오던 가시는 중간에 부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살 속에 반절의 가시가 박힌 채로 남아있었다. 바늘을 준비하고 알코올솜으로 소독했다. 조금씩 조금씩 남은 가시의 끝 부분을 향해 살을 살짝살짝 긁어냈다. 그동안 아이는 “아! 아! 악! 으악! 악! 악!”이라는 악소리를 한 50번쯤 말했을 거다. 드디어 끝 부분을 다시 만났고 바늘로 살짝 들어내는 순간, 또 부러지고 말았다. 엄청 아픈 건 아니지만 지끈지끈 짜증 나는 고통이 예상되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알코올솜으로 상처를 소독하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절규가 온 집안을 뒤덮었다. 그때부터 아이는 바늘이 닿기만 하면 까마귀가 되어 소리소리를 질러댔고 작은 가시 조각은 아이의 발에 남게 되었다. 아이는 그냥 가시를 지니고 살겠다고 도망갔고 찜질방에서 구워온 군고구마를 먹으며 평온해졌다.


남편은 우리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태평히 바둑을 두며 말했다.

“작은 가시는 녹아. 그냥 냅 둬.”

가시가 무슨, 성분이 히알루론산도 아니고 살 속에 어떻게 녹는단 말인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는 ‘진짜 녹아 없어질지도 몰라!’라는 일말의 희망이 생기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심리일까. 속여먹기 딱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이다. 아마 더 정신없는 상황이었다면 ‘살 속에 박힌 가시는 똥으로 배출될 거예요.’라는 말도 믿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가시가 녹을지도 몰라.’라는 생각과 함께 주말이 지나갔다. 당연하게도 가시는 그대로 남아 아이의 발을 괴롭히고 있었고 주말 동안 나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남은 가시가 염증을 일으키면 어떡하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은 왜 죄다 무섭게 생겼나. AI가 너무 좋은 화질로 그려놔서 사실적이진 않지만 뭔가 기괴하다) 가시가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면 어떡하지? (아이의 발을 여러 차례 들여다보며 가시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같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펑! 과부하가 걸렸다.


상대를 걱정하는 게 사랑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여기는 게 사랑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대의 아픔을 지레 짐작하며 상상을 하는 것도 사랑인가,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이 사랑인가, 호들갑 떨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사랑인가, 사랑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라는 생각까지 와버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은 예쁘고 아름답고 순수하고 고결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아이는 오늘 정형외과에 방문해서 마취 주사를 맞고 가시를 제거했다. 그 조그만 가시는 의사 선생님의 손길에도 또 부러지는 바람에 작은 조각 2개가 되어 나왔다. 아이는 절뚝거리고 나는 묻는다.

"돌멩아 많이 아파?"

"아니 이제 안 아파."

"근데 왜 절뚝거려?"

"안 아픈데 신경 쓰여서."

"앞으론 조심해서 다치지 마. 다치면 너무 속상해."

"네!"

아이의 경쾌한 대답에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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