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는 실체가 없는 누군가를 지칭하는 편리한 호칭이라고 생각합시다. 내 입에서 거짓말들이 흘러나올 테지만 혹여 거기에 진실이 어느 정도 섞여 들어갈 수도 있어요. 그 진실을 찾고 어떤 부분이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건 여러분의 몫입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영문학의 역사에서 완전히 예외적인 길을 연, 18세기의 중산층 출신 영국 여성들,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조지 엘리엇을 거쳐 마침내 버지니아 울프에 도달했다. 울프의 매혹적인 글쓰기가 없이는 모더니즘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20세기, 현대」라 불린 문학 연대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도착했다.
산문 쓰기에 있어, 이전까지는 누구도 구사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 새로운 스타일이 버지니아 울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새로움은 심지어 거칠지 않고, 편벽되지 않고, 강물이 흐르듯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도 역동 속에서마저 자연스럽다. 조용히 흘러가던 잔잔한 서사(敍事) 사이를 어느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 폭풍처럼 새로운 맥락을 풀어놓는다.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는 비평가들의 호칭이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Daedalus And Icarus (1615 - 1625), Anthony van Dyck (Flemish, 1599-1641)
어쩌면 그로부터 다시 수십 년이 흐른 뒤 세상이 발견한 「해체」라는 것이 이미 버지니아 울프의 글쓰기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은 애초 ‘모더니즘’의 전제가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므로, ‘모더니즘’이라는 거대 패러다임 속에 꼼꼼히 숨어있던 씨앗이 ‘포스트 모더니티’의 중요한 양상으로 피어난 것은 당연하다.
'의식의 흐름'이란 결국, 작가가 풀어놓은 맥락 사이로,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이질적인 맥락이 던져지고 그 맥락들이 격렬히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을 독자가 감당해야 하는 글쓰기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쓰기는 아직 완전한 ‘해체’에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더라도 서사 해체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가 아직 모르던, 우리가 아직 살피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가 남아 있을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던, 이미 1956년에 세상을 떠난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을 기억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지성이 문학사에 남긴 발자취가 20세기의 한복판에, 머나먼 도시 서울에서 한 시인에 의해 시가 된 것을 놀라워할 필요는 없다. 현대 소설에서, 문학 비평에서, 무엇보다 여성주의 글쓰기의 장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받아야 할 모든 상찬을 여기서 다시 되풀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인이 주목한 그 생애, 거대한 텍스트처럼 우리 앞에 놓여있는 울프의 생애, 그 생애가 과연 '서러운 것'이었는지를 되물으며 그 삶과 선택에 대하여 조금은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Study Head of a Young Woman (ca. 1618–20), Anthony van Dyck (Flemish, 1599-1641)
유미주의자가 발명한 모더니티
우리는 왜 오찬 파티에서 나직이 흥얼거리던 것을 멈추었을까? 어째서 알프레드는 이런 노래를 그만두게 되었을까?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그는 묻는다. 우리는 왜 오찬 파티에서 나직이 흥얼거리던 것을 멈추었을까? 반짝이며 빛나던 순수의 한숨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마도 그 답은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관통한 두 차례의 전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울프는 1882년 1월에 태어나, 열여덟의 나이로 20세기의 아침을 맞이한 사람이다. 절대로 지지 않을 것 같은 ‘대영제국’이 양산해 낸 중산층의 문화적 각성 속에서, 끝 없이 소란한 가족들의 거실 한구석에 앉아 조심스럽게, 남모르게 글을 쓰는 여성 작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한 무렵이다. 문학 비평가로서는 이보다 좋은 시기를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새로운 자아, 새로운 시선, 새로운 글쓰기가 세상에 막 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 순간, 버지니아 울프는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세상과 문명을 열독하고 있었다.
Head study of a man, Anthony van Dyck (Flemish, 1599-1641)
그리고 1914년과 1939년, 두 차례에 걸쳐 세상을 뒤흔들고 찢어버린 전쟁이 있었다. 개인사의 굴곡과 크고 작은 문명사의 부침이 두루 그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전쟁만큼 큰 영향을 미친 무엇인가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희망은 짧은 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전쟁은 온 세상의 낮은 흥얼거림을 빼앗아 가고, 울프 자신의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흔들어 놓았다. 테니슨과 로제티의 아름다운 시대는 끝났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증거는 모두 사라졌다.
전쟁이 세상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을 때, 울프 자신의 개인적 삶도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만난다. 1895년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고, 1897년에는 이복언니 스텔라가 세상을 떠나면서 신경 쇠약의 조짐들이 울프에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1904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후, 울프는 우울증, 공허감, 환각의 발작이 오가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온종일 그를 사로잡았던 지성의 충일감은 사라지고 그를 둘러싼 세상은 끝없이 분열한다. 1906년에는 그를 블룸스버리 그룹과 연결한 오빠 토비 역시 감염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Head Of A Bearded Man_Anthony van Dyck (Flemish, 1599-1641)
문학 평론가이자 ‘콘힐 매거진’의 편집자 아버지와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했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서재에서 스스로 원한다면 무엇이든 읽을 수 있을 수 있는 당대로서는 행복한 아이였다. 전쟁, 사랑하는 이들과의 사별, 어린 시절 경험한 성적 학대와 같은, 삶이 불러온 온갖 폭력으로부터 그를 지탱한 것은, 인문학으로 빚어진 조화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적어도 그 안에서 지극히 온전한 행복감을 맛보았음을 그의 산문들이 일관되게 증언한다. 설사 그가 우즈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해도, 그의 본질이, 그의 정신이 모두 어둠에 침윤당했다고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삶’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지성을 두려움 없이 표출하며, 충만한 자아를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살아간 전사다. 지적 저항과 불화만으로 문명과 대적한 작가 역시 아니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냉철한 지성은, 무미건조한 저항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세계를 직시한다. 문학을 통해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유미주의의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Head of a Young Man (c. 1617-1618)_Anthony van Dyck
블룸즈버리 그룹
울프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인문학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헤엄치던 평론가다. 시대를 관통하는 인문학적 지식, 역사와 철학에 대한 거대한 지식 프레임, 이제 막 활짝 꽃 피우기 시작한 사회학적 관점으로 문학을 조명한 비평가로서의 눈이 없었더라면 제인 오스틴의 극도로 효율적이면서도 고아한 글쓰기와 샬럿 브런테의 직설적으로 터져나온 분노, 에밀리 브론테의 비범한 천재성은 다시 발견되지 못했을 것이다.
20세기의 문명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던 오빠 토비의 소개로 울프 역시 케임브리지와 킹스 칼리지 런던, 옥스퍼드의 졸업생들로 구성된 블룸즈버리의 일원이 되었다. 느슨한 지적 연대처럼 보이지만 그룹을 구성한 이들의 이름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경제학자 케인즈, 작가 EM 포스터, 전기 작가 리튼 스트레이치, 오빠 토비 스티븐, 버네사와 버지니아 스티븐(버지니아는 그룹의 일원인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며 버지니아 울프가 되었다.)외에도 존 스털링, 테니슨, 화이트헤드, 로저 프라이 등이 그룹의 일원이었다.
Saint Rosalie Interceding for the Plague-stricken of Palermo (1624),Anthony van Dyck (Flemish, 1599-
버트런드 러셀과, 울더스 헉슬리, T.S. 엘리엇도 가끔 함께했다는 것을 보면, 20세기 모더니즘의 정신, 불가지론과 분석철학, 수리논리학에 경도되어, 이를 인문학과 경제학, 사회학에 광범위하게 수용한 젊은 지성 집단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블룸즈버리 그룹과 버지니아 울프의 지적인 상호작용, 문학 비평에 있어서 울프의 노선을 짐작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울프는 스스로 출판사를 만들어 EM 포스터를 비롯한 블룸즈버리 그룹 작가들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영국 문학사에서 여성주의 관점의 비평을 사실상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표출한 비평가 버지니아 울프의 영향력을 두 번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자기만의 방」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문득 ‘오늘’의 화자로부터 열띤 강연을 듣고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1941년에 세상을 떠난 작가가 여전히 당대의 울림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은 작가의 힘일까, 아니면 여전히 변하지 않은 문학 풍토의 힘일까.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프랑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가 아직도 힘을 가진 오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한마디를 여기 새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