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의 712번 시다. 마차에는 죽음과 불멸 그리고 내가 탔다. 학교도 지나고 들판도 지나고 떨어지는 태양을 지나친다. 삶의 국면들을 지나 처마가 땅속에 묻힌 집에 도달한다. 그리고 다시 알게 된다. 영원처럼, 영원을 향해 열린 것 같던 삶의 시간이 문득 하루보다 짧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음을. 내가 죽음에 들를 수 없어 그가 친절하게도 나에게 왔다. 에밀리 디킨슨 이전에도 이후에도 죽음을 마차에 태워 함께 길을 달린 작가는 없었다.
Carmen Gaudin (1885) Henri de Toulouse-Lautrec (French, 1864-1901)
소천(召天) / 소환(召還)
「Called Back」이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묘비명은 자주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되었다. 당대 사람들, 그의 가족들과 친지들은 그가 하늘의 부름, 신의 부름을 받고 지상을 떠나 안식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Called Back’이라는 묘비명을 썼을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에 태어나 1886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났지만, 시인이 1920년대 이후로 미국 문단에서 발견되고 재평가되는 과정을 거친 것을 생각하면 새삼 그의 묘비명은 세상이 다시 그를 부른 ‘소환’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소환되었다. 사후 그의 동생 러비니아 노크로스 디킨슨과 가족들, 그의 시를 사랑한 작가들 덕분에 무려 1,800편을 넘는 시들이 1894년 시집으로 엮이며 세상에 나왔다. 1955년에는 토머스 존슨이 디킨슨의 시선집을 펴내면서 그의 시는 소위 ‘존슨 넘버’로 불리게 된다. 우리가 문두에서 함께 읽은 시는 존슨 넘버 712번의 시다. 제목이 없는 디킨슨의 시들은 그렇게 세상에 소환되었다.
Cheval de chasse à courre (1880) Henri de Toulouse-Lautrec (French, 1864-1901)
확장된 메타포와 이미저리, 그리고 시간
그의 시는 당대로서는 하나의 혁명이었다. 운율을 포함해 시적 형식미를 중시하던 시단의 흐름으로서는, 겉으로 보기에 부서진 파편처럼 보이는 언어들이 만들어 내는 「확장된 메타포」와 고밀도로 구축된 「이미저리」를 당대의 문단이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단순한 말들이, 때로는 반복되며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심상을 구축한다. 그의 시 세계가 자주 보여주는 「지극히 충만한 순간」의 밀도감이다.
오랜 탐색과 집중의 시간을 거치며 거의 매일 시를 쓰던 디킨슨을 세상은 흔히 은둔의 시인으로 바라보지만, 시작에 진심이었던 시인은 문단의 지인들에게 종종 자신의 시를 선보이려 시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대에는 역시 운율과 시적 형식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가 가장 열정적으로 시를 써 내려가던 시기에도 이런 반응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작들에는 지극한 충만함의 「순간」과 은둔의 적막이 지배하는 「영원」이 함께한다. 그리고 그 영원, 시간의 연속성은 자주 「죽음」과 만나고 충돌하지만, 결코 불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죽음은 마차를 타고 함께 여행하는 여행자다.
어느 순간, 시인은 완벽하게 온전한 몰아의 일체감을 맞이한다. 자연에 취하고, 몽상에 취한 그 순간은 시인으로서의 자아가 반드시 그려내야 하는, 오로지 의미 있는 「정지된 장면」이다. 시간이 빠져나간 그 순간을 새롭게 재편해서 드러내는 것, 그 정의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장면의 밀도를 담아내는 것이 마치 시인의 미션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순간은 끊임없이 재현된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 죽음과 함께 달리는 연속된 시간이 있다.
L’abandon (Les deux amies) (1895) Henri de Toulouse-Lautrec (French, 1864-1901)
삶이 응축한 언어
에밀리 디킨슨은 그가 태어나 평생 떠나지 않은 매사추세츠 에머스트의 유력자였던 아버지와는 대체로 불화했던 것 같다. 현재를 사는 권위적인 정치가와 영원을 몽상하는 시인의 거리가 가깝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버지의 교육열이 딸들에게도 향해있었던 덕분에 7년간의 사립학교를 마치고, 신학교에서도 공부했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학을 포함해 인문학에 깊은 배움을 이룬 것은, 그 시의 심층적인 콘텍스트를 통해 충분히 드러난다. 문헌적 콘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포된 의미와 풍부한 메타포를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다.
디킨슨의 유명한 ‘은둔’은 어머니의 병과 어느 정도는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 자신의 몽상적인 기질과 ‘충만함과 침잠’을 오가는 정신적인 기질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으나 거의 30년을 병상의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간 것을 보면 관련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The Marble Polisher (1882–87) Henri de Toulouse-Lautrec (French, 1864-1901)
그가 문단 지인들과 서신을 통해 오랜 기간 적극적으로 교제해 나간 모습들과 병이 나서 의사를 만날 때조차 문을 사이에 두고 진찰을 받은 사실들, 자기 작품을 시집으로 출간하는 것에는 반대하면서도 기꺼이 작품을 당대의 문학지를 통해 세상에 선보였던 사실들은 자주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다.
서로 부합되지 않는 사실들이 충돌하며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사람의 인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그려내려는 이들을 당혹하게 한다. 그를 오랜 내면의 응시를 통해 경지에 오른 역동적인 시인으로 그려내는 이들의 시선은 시인의 침잠, 그 깊이와 어두움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항상 흰옷을 입은 채 수녀 같은 삶을 살다 간 ‘은둔의 시인’이라는 말로 그 삶을 평면의 틀 안에 가둘 수는 없을 것이다. 날카롭게 단련된 언어로 찬란하고도 공허한 세계를 펼쳐 보여주는 시인을 설명하기에 충족되는 이미지는 아니다.
여성으로서 19세기의 미국 문단에서 월트 휘트먼의 경지에 오른 시인이라는 명성 역시 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술어다. 그 시 세계는 시대, 성별을 포함해 온갖 삶의 조건들 앞에서 자유롭다. 그 어디에도, 그 무엇에도 포괄되지 않는다. 그가 그리는 순간, 그가 그리는영원은 결코 그 무엇에도 포섭되지 않는다. 그가 위대한 시인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