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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Dec 16. 2023

실비아 플라스

이름을 찾아서, 문학편 #14 Plath X Munch

  실비아 플라스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번역 문학’의 어려운 점을 먼저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산문도 그렇지만, 시(詩)의 영역에서 번역 문학이 처한 어려움은 가중된다. 「아름다운 말」은 글자 그대로 말로부터 온다. 소리로부터 온다. 의미와 심상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2차적인 것이다. 산문 역시 소리의 리듬, 소리의 생동감 넘치는 운율을 갖지만, 시는 산문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운율(韻律)을 보여준다.


  과연 다른 언어로 시가 가진 고유의 운율마저 번역하는 것은 가능할까. 원작 시의 언어가 가진 운율을 다른 나라의 언어가 가진 운율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과정을 ‘번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역시 엄연한 창작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고개를 든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우리 언어의 규범에 따른 의미적 요소를 살리기 위해 행을 바꾸지 않을 수 없을 때, 원시가 가진 내재적인 운율은 지켜지고 있는가.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시가 종이 위에 펼쳐지면 눈으로 감각하는 시각적인 형태의 요소도 감안해야 한다. 시의 번역자는 본의 아니게 창작자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 셈이다.


Coastal Landscape (1918) Edvard Munch


  난설헌 허경번의 한시는 독특한 사례다. 애초 그 나라의 언어, 그 나라의 문자를 사용해 한문학의 내재적인 규범 아래 창작된 작품들이었다. 본토인 중국에서 그토록 사랑받았던 데는 단순히 시상(詩想)이 던져 주는 아름다움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작가가 중국의 언어가 가진 소리와 성조를 알고, 한시의 내재적인 리듬과 낭독으로 드러날 운율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정도의 각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번역하기 어려운 「소리의 제한」마저도 뛰어넘는 위대한 시인들도 존재한다. 셰익스피어의 번역된 소넷들은 심상만으로도 하나의 경지를 보여준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그 단순하면서도 밀도 있는 이미지들의 부딪힘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강렬한 시상 역시 소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일상적인 언어의 구조에서는 서로 만날 가능성이 드문 말들이 교차하며 경험하지 못한 격렬한 이미지의 향연을 보여준다.


  그의 인생을 하나의 드라마틱한 인간상으로 환원해 추앙(사람이 사람을 추앙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나로서는 사용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하거나, 조롱하는 위험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그의 작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시인으로서 시를 남겼으므로 우리는 그저 시 안에서 끝도 알 수 없는 절망과 그럼에도 다시 날아오르는 희망을 발견할 뿐이다. 그 희망이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허망한 것일지라도.     


Elm Forest in Spring (ca. 1923) Edvard Munch


Mad Girl's Love Song

By Sylvia Plath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

I lift my lids and all is born again.

(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The stars go waltzing out in blue and red,

And arbitrary blackness gallops in: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

I dreamed that you bewitched me into bed

And sung me moon-struck, kissed me quite insane.

(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미친 소녀의 사랑 노래

실비아 플라스     


나는 눈을 감았어 그러자 온 세상은 죽음으로 무너져 내렸지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세상은 다시 태어나지

(당신은,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허상이라 생각해)

별들은 붉고 푸르게 차려입은 채 왈츠를 추러 나가고

제멋대로인 어둠이 질주하고 있어

당신이 나를 침실로 유혹하는 꿈을 꾸었어

그리고 달빛에 부딪히는 노래를 불러 주었지, 키스는 나를 미치게

(당신은,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허상이라 생각해)    ...중략

* 번역: 워커     


  이 시는 실비아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1953년에 ‘마드모아젤’ 잡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드라마틱한 대조로 죽음의 우울한 그림자와 뜨거운 삶의 열정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 모든 끓어 넘치는 사상들이 그저 하나의 환영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드러낸다. 1952년, 마드모아젤 공모전에서 시로 당선되며 편집자로서 인턴이 되어 뉴욕에서 살아갈 무렵이다. 문학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위해 시작한 뉴욕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뉴욕의 경쟁적인 환경 탓이었을까. 우울증이 심해지고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Madonna (1895–1896) Edvard Munch (Norwegian, 1863 - 1944)


  실비아 플라스는 학업에 열정적인 영리한 학생이었다. 웰슬리와 더불어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명문대학으로 유명한 스미스 대학을 장학금으로 다녔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성공이다. 강렬한 성취는 타고난 수월성과 감수성, 집중력, 열정의 결과물이었지만, 그런 만큼 인생이 던져 주는 크고 작은 생채기가 계기가 되어 생긴 우울증은 나날이 깊어져 갔던 듯싶다.


  벌을 연구하는 학자였던 아버지가 아홉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면서, 열정적으로 시작한 뉴욕에서의 편집자 생활이 오히려 긴장과 우울의 자극이 되면서, 케임브리지 유학 시절 만난 남편 테드 휴스와의 결혼이 완전히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돌이킬 수 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든 흔적들이 있다. 각자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시를 남긴 시인 부부가 되기를 희망한 실비아의 선택은, 출산과 육아, 가사의 책임, 남편의 경력을 위한 내조자라는 사회적 요구 앞에서 매일 조금씩 부스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실비아 플라스는 멈추지 않고 시를 썼다.


  씁쓸한 결혼 생활의 와중에도 1960년 최초의 시집, 「거대한 조각상 The Colossus and Other Poems」 이 세상에 나왔지만, 기대한 만큼의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이미 여덟 살의 나이로 신문사 공모전을 통해 등단할 만큼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서 인정받던 실비아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1963년 1월에는 소설 「벨자」를 발표하기도 했다.


  시작(詩作)은 같은 해 2월 남편의 외도로 별거가 시작된 후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이주한 집에서 죽음을 선택하던 날까지 계속되어, 그가 남긴 검은색 시작 노트가 책상에서 발견되었다. 순서까지 직접 정돈해 둔 유작 작품집이었다. 이때 발견된 시들이 논란의 사후 시집 「에어리얼」로 묶인 작품들이다.      


Two Women on the Shore II (1933–35) Edvard Munch


에어리얼, 에어리얼     


  유작 시집 「에어리얼」은 그야말로 광풍에 휩싸였다. 기괴한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천재 시인이 바로 그 집, 그 방에 남긴 한 권의 시집은 온갖 미디어들의 미친 취재 열기를 몰고 왔다. 영국의 계관 시인이었던 남편 테드 휴즈는 별거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이자, 실비아의 사후 시집을 본인의 구미대로 편집한 당사자로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몇몇 시들이 제외되고, 순서 역시 휴즈가 임의대로 수정한 것이 알려지자, 비판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흘러갔다. 문학은 사라지고 스캔들만 남았다. 그리고 실비아 플라스는 사회문화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정작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에어리얼의 시기에 작가가 도달한 시 세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에어리얼로 묶인 시들은 60년에 발표된 「거상」의 작품들과는 온전히 괘를 달리하며, 오로지 ‘실비아 플라스’만이 쓸 수 있는, 그가 아니면 누구도 쓸 수 없는 유니크한 언어로 빚어낸 시 세계를 보여준다. 그와는 떼놓을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는, 시 속에 묘사된 외부 세계의 위협적인 풍경과 만나 광폭하지만, 묘한 균형을 이루어 낸다. 죽음은 이제 문전에 도달했고, 시인은 미묘한 거리를 유지한 채 죽음을 응시한다.


  테드 휴즈는 「에어리얼」 초판의 서문에 ‘참된 자아가 언어를 찾아서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눈부신 사건이 된다.’고 썼다. 「에어리얼」을 작가의 원래 의도대로 복원해 출간한 딸 프리다 휴즈의 말을 빌리자면, 테드 휴즈가 적어도 실비아 플라스의 시 세계를 경이롭게 바라보았던 만은 사실인 듯싶다.


The Scream (1895) Edvard Munch


  실비아 플라스에게 자아의 소멸은 지독히도 부조리한 세상의 소멸이기도 하다. 절망적인 이기주의의 극치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죽기를, 책임에서 벗어나기를, 어머니의 자궁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To annihilate the world by annihilation of one's self is the deluded height of desperate egoism. The simple way out of all the little brick dead ends we scratch our nails against.... I want to kill myself, to escape from responsibility, to crawl back abjectly into the womb."

By Sylvia Plath


  프리다의 말처럼 작품집 「에어리얼」은 1963년, 세상에 존재한 바로 그 시점의 실비아 플라스다. 실비아 플라스의 세계는 다른 모든 일상적 소음과 소란을 걷어내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다. 삶의 부조리를 향해 스스로도 붙잡을 수 없는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 그러나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드러낸, 그래서 위대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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