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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오징어 게임

사람으로 사는 사회

by 포레스임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

보육원(고아원)의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퇴소를 한다. 보육원이나 공동체 가정에서 불안한 첫발을 딛고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한눈을 팔면 바로 떨어지는 (또는 떨어지게 만드는) 외길 낭떠러지로 떠밀리는 젊은이들, 매년 이천여명의 우리 사회 귀한 그들이 채 삼 년도 되기 전 50%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그중 일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D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퇴소를 앞두고, 통 잠을 이룰 수없다. 곧 보육원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감정의 준비부터 전혀 돼있지 않았다.


"과연 나는 밖에 나가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원장 아버지한테 받은 주소의 엄마를 찾아가 볼까"


이런저런 번민으로 뒤척이다 보면 새벽녘이 되곤 한다.


결국 나가야 한다는 명제는 바뀌지 않았다. 퇴소 일주일 전, 사회복지사 이모가 부른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통장하나를 D에게 준다. 감이 안 잡힌다는 표정으로 D는 뭐냐고 물었다.


"이거 오백만 원이 든 통장이야, 자립지원금"

계산 하나는 빡시게 정확했다. 이 통장으로 오 년 동안 월 35만 원씩 자립지원수당도 넣어 준단다.

D는 나름 믿는 데가 있었다.


수능점수 보다 좀 낮은 수도권 소재 A대학에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배정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주거는 해결되었고, 일정학점만 받으면 등록금도 면제이니 문제없다고 D는 생각하였다.


보육원 동생들에게 D는 롤모델이었다. 원장아버지는 틈만 나면 동생들에게 공부해서 D처럼 되어 나가야 한다고 주문을 걸었다. D도 그런 대우가 싫지는 않았다.

짐을 싸고, 드디어 문을 나섰다. 보호종료아동이 아닌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아직은 모든 것이 희망의 눈으로 보였다. 으르렁 거리는 야수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엔 너무 철이 없었다.

보육원이 아닌 세상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기숙사에 짐을 채우니, 독립된 성인으로 인정받는 기분으로 들떠있었다. 2인 1실의 기숙사에는 D처럼 지방에서 온 K가 분주히 짐을 풀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는데 K는 엄마가 이런저런 잔소리와 함께 냉장고에 무언가를 잔뜩 넣고 있었다. 머쓱한 기분으로 인사를 하니, 환한 웃음으로 음료수 하나를 건넨다.

K가 부러웠다. 누군가 살뜰히 챙겨주는 가족이 있다는 건,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인지 그보다 한결 여유 있고, 느긋해 보이는 그의 모든 것이 부럽다고 D는 생각했다.


처음 시작하는 대학생활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D는 편의점 알바자리를 하나 구했다. 자립지원수당 35만 원은 턱없이 적었다. 경험은 없었지만 이것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니, 눈치 있게 빨리 그는 적응했다. 저녁시간 늦게까지 안 팔린 도시락은 가져가 먹을 수도 있었다. 과제준비에 늘 쫓기지만 대학생활은 다 그런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열심히 버텼다. 어느 날 K가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와 D에게 홍대클럽을 가자고 한다. 대학생활을 너무 빡빡하게 한다나 뭐라나, 횡설수설 일장연설을 하고는 자기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라고 꼬드긴다. 사실 말은 많이 들어본 클럽이 D도 궁금하긴 했었다.


홍대 근처의 힙합클럽을 K와 갔다. 라운지 펍 어디를 간다고 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들 또래의 남녀가 뒤엉켜 거리를 활보하고 지나갔다. 클럽에 들어서니 붉은 섬광이 일고 자리를 찾아 앉으니, 편의점에서 보는 것보다 비싸 보이는 주류와 안주가 바로 놓인다. 마티니 한잔을 입에 대는데, K는 벌써 헌팅을 나가자 보챈다. 이끄는 대로 무대 위에서 대충 흔들다 자리로 오니, 옆테이블의 여자가 묻는다. "둘 이세여" 고개를 끄덕이자 합석을 하잔다. 돌아온 K에게 물으니 D의 손을 잡아 올리고 하이 파이브를 해댄다. 보육원에서 바로 대학으로 오는 동안 그는 이런 부류의 삶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전 다른 신세계라고 D는 생각하였다.



1학년의 두 학기가 벌써 지나고 있었다. D는 입이 바짝 마르고 속이 탔다. 성적평가 발송이 오늘인가 내일인데 아직 연락이 없었다. 사감실에서 D를 찾는다고 앞 방친구가 한마디 던지고 사라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도 1층의 사감실이 영화에서 본 탄광의 갱도처럼 꺼림칙하게 D는 느껴졌다. 안 좋은 예감은 늘 정확했다. 성적이 등록금 저지선은 넘겼으나, 아쉽게도 기숙사에서는 나가야 한단다. 갑자기 이런 현실이 그는 믿기지 않았다.

K와 어울리면서 클럽 출입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틈만 나면 어울려 보상심리 때문인지 홍대입구를 어슬렁 거리더니, 성적이 형편없이 추락한 것이다. 입학 초기의 그 다짐은 온데간데없었다.


다음학기가 시작되기 전 1월 말까지 기숙사를 비워야 했다. 학생처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느라 이리저리 알아보았으나 규정은 어쩔 수 없었다. 기숙사 대기인원이 워낙 많아 학점으로 당락을 가르니, 알면서도 방심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방에 올라오니 K는 이미 짐을 뺀 상태였다. 기말도 끝났으니 집으로 간 모양이다. D는 갈 곳이 없었다. 있을 턱이 없었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짐짓 자위하며, 그는 통장내역을 보고 있다. 700만 원, 천만 원을 좀 넘기던 금액이 방종의 대가로 쪼그라들었다. D는 갑자기 보육원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가고 싶지는 않았다. 원장 아버지가 전해준 엄마 주소가 눈에 들어온다.


경남 사천시 대포항 근처의 주소는 늘 궁금했다. 엄마가 다섯 살 배기인 나를 경기도의 보육원에 맡긴 이유부터가 궁금했다. 머리도 식히고 근원적 궁금증도 풀리라 작심하고, 엄마가 있다는 사천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곳은 횟집이었다. 주인인 듯한 분께 엄마의 이름을 대니 누구냐고 묻는다. 아들이라고 말하니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미친년! 끌어안고 살았어야지"


를 인도해서 따라간 곳은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가게 안 몇 명의 노인네들 술판 틈바구니에 초로의 여인이 희미하게 D를 쳐다본다. 그는 순간 괜히 왔다 싶었다. 그를 버릴 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놀라서 그랬는지 의자에서 쓰러져 바닥에 누워 D가 붙잡으니 " 왜 왔노 이 눔의 시키야!" 어이가 없었다. D는 '나는 무슨 상상을 한 것일까?' 되뇌어 보았다.


D의 엄마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혈액이 역류해서 언제라도 급작사 할 수 있다고 한다. 병원을 다닌 지도 오래되어 근래에 자주 심방세동으로 쓰러진다는 말을 들었다. 안 들었으면 몰라도 그냥 갈 수는 없었다. D는 제엄마 손에 백만 원짜리 수표 두장을 꼭 쥐어주고, 병원에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했다. '어쨌든 날 낳아주신 분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올라오는 기차에서 왠지 모를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D는 급하게 자립준비청년에게 혜택을 주는 전세임대주택을 알아봤다. 시행된 지가 얼마 안 되어 그나마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ROTC나 부사관 시험도 알아봤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일단 휴학을 할 생각이었다. 군대는 어차피 가야 하니까. 주거문제가 시급했다. D는 궁리를 해봤다' 한 달여의 시간 후, 나는 어디에 있게 될까' 규칙과 규정의 항목에 D의 인생은 요동쳤다. 아무것도 그의 행로를 규정해 주진 않았다.


D에게 보육원에서 전화가 왔다. J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는 누군가 머리를 후려친다고 느꼈다. 이제 겨우 일 년 가까이 시간이 됐을 뿐인데 그는 어이가 없었다. 미용사 자격을 취득하고 학원에서 받아온 마네킹 머리를 끼고 살던 J였다. 나이는 동갑이나 어려서부터 오빠라는 호칭으로 D를 따라다녀 여동생처럼 생각해 온 아이였다. 눈망울을 굴리며 하굣길에 이철헤어숍을 지날 때마다, "오빠! 난 저런 미용실 100개쯤 만들 거야"라고 말하며 까르르 웃던 애였다. D는 자기 살기 바빠 연락 한 번 못해본 게 가는 중에도, 내내 무엇이 얹힌 듯 답답해졌다.


주거가 문제였다. J는 미용학원에서 병설 운영하는 미용실에 취업이 됐었다. 근처의 자립준비청년센터에서 제공하는 주거시설에서 지낸다고 들었다. 원장 아버지와 사회복지사 이모는 J의 일기를 근거로 주거센터장을 고발할 거라고 했다.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D는 책상에 놓인 J의 일기를 아무렇게 들춰보았다. 그 페이지에는 열심히 벌고 저축해서 오피스텔에 들어가고 싶다고 쓰여있었다.


문자가 왔다. ROTC 심사에서 애석하게 탈락했다는 내용이었다. 한 번의 실수는 D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그들에겐 처음부터 선택지가 없었다. J의 화장을 위해 승화원으로 가는 중, D는 아득한 절벽사이의 깊은 골짜기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보호종료아동 지원단체인 청소년 그루터기 관계자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보호아동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무려 2,000여 명의 아이들이 18세가 되면, 해마다 방출되어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 청년인구 감소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이 청년들부터 출발의 균형점을 맞추는 노력을 사회와 국가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100401070130316001

기사내용 발췌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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