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결혼 = 아내, 늦게 결혼 = 나
앞선 이야기
20대 중반에 결혼한 아내 vs 30대 중반에 결혼한 나
우리의 신혼생활은 처음에는 누구나처럼 꿀이 떨어졌다.
함께 여행을 갔다 각자의 집으로 갈 필요 없이 '우리집'에 함께 돌아왔고 매일매일 함께 있을 수 있다. 출퇴근하는 시간 외에는 항상 같이 있었고 이런 게 진정한 행복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상황은 바뀐다.
우선 둘만의 시간은 아이가 자는 시간뿐이다.
내가 퇴사해서 집에 있었지만 둘이 함께 아이를 보는 시간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한 명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한 명은 다른 일을 했다. 나 같은 경우 일을 하고 또 집안일을 하거나 분리수거를 하고 아내는 요리를 하거나 아이를 위한 이유식 등을 준비했다. 겨우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셋이서 함께 산책을 나가는 시간 정도뿐이었다.
육아는 힘들다. 정말 힘들다.
거기에 대한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다. 육아는 내가 나이가 10살 많아서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젊어서 더 잘하는 것도 아니다. 둘 다 동일선상에서 시작한 것이고 그 누구의 말이 정답인 것도 없다. 다행히 우리는 육아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비슷해서 다툴 일은 별로 없었지만 가끔씩 아내가 예민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가 잘 캐치해서 행동해야한다.
서른 중반에 결혼하여 서른 후반이 된 내가, 늦다면 늦는 나이에 결혼해서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우선 나는 해볼 건 나름 다 해보았다. 취직해서 10년간 일했고 돈도 벌어보았고 진급도 월급도 올라가 보았다.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짬이라고 할 정도로 쌓았으며 여행도 많이 다녔다. 이제는 여행도 좀 그만 다니고 돈을 모으자 할 때쯤 코로나가 터졌고 정말 운 좋게 목돈을 좀 모으게 되었다.
결혼을 하니 확실히 안정적이긴 하다.
나는 경제권을 모두 아내에게 맡겼고 돈은 모두 아내가 굴린다. 뭘 구매하든 아내에게 항상 허락을 받고 구매한다. 예전에는 옷도 이래저래 사고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옷을 사지 않게 된다. 6,7년 전에 산 옷을 아직도 입고 다닌다. 결혼하면서 한국에 집도 사게 되었고 특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도 않기에 돈 쓸 일도 없다.
그런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20대까지만 해도 건강검진을 하면 몸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딱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이래저래 사소한 문제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서른 중반이 되어서는 고지혈증 등의 문제들이 발생했다. 예전에는 아무리 저녁에 먹어도 살이 안 찌더니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살이 쉽게 찌고 운동은 부족해졌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친구들도 다 비슷한 증세를 겪고 있다. 소식(小食)하고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할 나이인데 반대로 운동은 적게 하고 술은 더 자주 마시게 되니 건강해질 리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육아는 쉬울 리가 없다.
우선 너무 피곤하다.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데 나는 그저 앉아있거나 누워만 있고 싶다. 아이는 계속 안아달라고 칭얼대는데 안고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왜인지 항상 피곤하다.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나는 어디 놀러 가면 항상 오후 3시쯤 되면 피곤하다. 이렇다 보니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데 아내가 싫어해서 요즘은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다.
20대 후반인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대 후반이라도 여전히 어린 나이이다. 친구들은 일찍 결혼한 아내를 보며 놀라기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아내의 입장은 좀 다른 것 같다. 요즘은 SNS가 워낙 발달하다 보니 굳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지 않아도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아내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끼친다. 본인은 집에서 하루종일 애 보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친구들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진급을 하고 차를 사고 남자친구와 좋은 곳에 가 데이트도 하고 해외여행도 하고... 같은 나이인 친구들은 신나게 놀러 다니는데 나는 집에서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로 아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도 나중에 육아하면 똑같다며 일찍 육아를 시작한 만큼 일찍 끝나니 나중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주겠다며 위로한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어린 나이에 나와 결혼한 아내를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남편의 역할이 중요한 듯)
아내는 가끔 동네 동갑내기 아이를 가진 엄마들과 모임에 나가는데 10명의 엄마들 중 가장 어린 편이다.
다들 첫 아이인데 엄마들의 나이가 천차만별이다. 30대 초반의 엄마들이 가장 많고 20대는 아내 밖에 없다. 30대 후반의 엄마도 있는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한다고 한다. 아내도 육아로 무척이나 힘들어하지만 30대 후반의 엄마는 아이가 놀고 있으면 대부분 누워있거나 쉬고 있다고 한다. 나처럼. (그래서 아내가 나를 좀 이해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내가 체력적으로 월등한 것도 아니다. 출산 후 산후통으로 손목과 허리가 좋지 않다. 아내의 말로는 육아는 몇 살에 하더라도 힘든거란다.
아내는 매번 나를 놀린다.
아이가 스무 살이면 여보는 몇살이더라~?
아내는 50살도 안되지만 나는 거의 60살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이가 많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가 없는 친구들도 있으니 그런거라도 생각하며 정신승리라도 해본다... 사실 내 친구들은 아직도 40%가 결혼하지 않았다. 아마 나중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학부모 모임이라도 하게 된다면 학부모의 나이가 천차만별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체력적인 문제가 가장 크고 또 어린 나이에 결혼한 사람에 있어서는 친구들과 자신의 삶이 비교될 것이다. 그러나 결혼함에 있어서 일찍 결혼하고 늦게 결혼하고의 장단점 보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주변에 결혼하지 않은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어떤 친구들은 반포기 상태고 어떤 친구들은 너무 하고 싶은데 만날 기회가 없다고들 한다. 나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각자의 시간이 다를 뿐, 빠르고 느리고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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