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엄마처럼 살기 싫어
실은 엄마만큼만 해내고 싶어
어릴 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면 아빠를 대답하곤 했다. 나뿐만 아니라 취업 서류나 자기소개서 내 존경하는 인물란에 아버지를 기입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본업에 충실한 아버지의 모습을 존경의 이유로 꼽는다. 요즘 말로 '본업존잘'. 본업을 잘 해내는 사람은 누가 봐도 멋있다.
나의 아빠는 경찰공무원이었다. 어떤 이는 박봉에 힘든 직업이라 하고, '견찰'이라는 둥 '짭새'라는 둥 조롱받기도 하지만 어릴 적 나는 아빠의 직업을 말할 때 내심 뿌듯해했다. 학교에서 가끔 진행한 부모님 직업체험 시간에 아빠가 일일강사로 초청된 날, 친구들 사이에서 내 어깨가 한껏 높아졌던 기억도 생생히 난다.
반면 엄마에 대한 과소평가는 심했다. 매일 집에서 밥,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살림에 전념하는 엄마의 모습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 뒷바라지를 하고, 나와 동생을 돌보며 하루를 보냈다. 머리는 늘 파마한 커트 머리에 걸레질하기에 편한 옷차림,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며 시장에서 가격을 깎고 돈 아까워 웬만한 거리라면 무거운 것을 들고도 걸어 다니는 분이었다.
"난 엄마처럼은 살기 싫어"
"그래. 넌 꼭 엄마처럼 살지마"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엄마와 다투다 욱하는 마음에 엄마에게 상처줄만 한 말을 했다. 나의 그 말에 엄마는 오히려 단호하게 답했다. 너는 똑 부러지니까 풍족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엄마처럼은 살지 말라고 했다. 어릴 때 결혼한 엄마는 없는 형편으로 아이 둘을 키워보겠다며 아등바등 살았던 시간이 너무나 지겨웠다고 했다.
"조급해하지 마.
아기 돌보는 일이, 얼마나 좋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엄마는 매일같이 아기와 씨름하는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곤 한다. 아직도 다 큰 딸을 달래주는 따뜻한 분이다. 사실 아기를 보며 살림을 하는 것은 내 꿈이나 목표와 별개로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함을 야기한다. 과거 둘이 벌던 수입은 반토막 나고, 그간 쌓은 내 경력은 점점 단절된다. 앞으로 써야 할 돈은 분명 더 늘어날 테고, 내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계속 커진다. 그러다 보니 집안 살림만 하게 된 것도 모자라 생활비를 아끼게 된 것까지 엄마의 모습과 같아졌다. 이제는 꼭 엄마처럼 살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요즘은 엄마가 참 대단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주변에 도움받을 곳 하나 없이 스물다섯의 어린 엄마는 혼자서 대체 어떻게 육아와 살림을 해 낸 걸까. 그 흔한 분유 포트도 빨래건조기도 없는 세상에서 손으로 기저귀와 손수건을 빨고 삶아가며 아기를 돌봤을 것이다. 포대기를 둘러메고 시장 보고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식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일을 핑계로 육아에 동참하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기보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네 엄마 지독한 건 알아줘야 돼"
아빠의 이 말은 그간 힘들게 고생해 준 엄마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자랑스러움을 담고 있다. 엄마는 아빠가 힘들게 벌어온 돈을 알뜰히 관리해 나와 동생에게 부족함 없이 베풀었다. 허투루 낭비하는 것이 없었고, 본인에게 쓰는 돈은 야박했다. 분명히 그 덕에 가족 모두 잘 살 수 있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던 딸은 이제 엄마처럼만 잘 해내고 싶다. 육아도 서툴고 살림도 미숙하지만 어릴 적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 딸에게 살뜰히 베풀고 살아야지. 만약 시간이 흘러 내 딸이 나에게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말한다면 피식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우리 엄마처럼 나도 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또한 소중한 딸아. 나보다 멋진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라고도 말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