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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몽양 Apr 22. 2021

11. 립밤 대신 뽀뽀하고 싶어

립밤과 매니큐어


시어머니는 결혼 전부터 나를 굉장히 예뻐라 하셨다. 두 형제를 키우셨던 어머니는 딸이라는 존재의 색다른 예쁨에 반하신 듯 보였다. 처음으로 함께 밤을 새운 그날, 나의 손과 발을 보시며 귀엽다고 까르르 웃으시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그러나 곱디 고운 손은 내가 살아온 인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고생만 하셨던 엄마는 내게 절대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컴퓨터 키보드나 두드릴 줄 알았던 내 손은 30세가 넘도록 아기 손 마냥 부들부들했다. 타고난 피부색은 하얬고, 맨들 맨들 분명 고운 손이었다. 


아기를 낳은 지 8개월이 넘은 지금, 나의 손은 엄마의 손과 같다. 희한하게도 핏줄이 튀어나왔고, 거칠었으며, 손톱은 짧게 바짝 잘라 뭉툭해졌다. 부드러웠던 여자의 손은 강인한 엄마의 손이 됐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예쁘고 건강한 아기를 얻은 대가로 앳된 젊음을 바쳐야 하는 것이 엄마의 숙명은 아닐 까. 어쨌든 분명 후회는 없다. 


어느 날 아기의 얼굴에 상처를 본 후 아기 손톱을 짧게 잘라 줬다. 실수로 너무 짧게 자른 손톱 때문에 빨갛게 자국이 생긴 아기의 손을 보고 시어머니가 어찌 된 일인지 물으셨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나자 어머니는 갑자기 내 손을 보자고 하셨다. 당황스러웠지만 별 일 아니란 듯이 손을 쑥 내밀었다. 이미 고운 손은 온 데 간데없고 울퉁불퉁 핏줄들이 난무하고 하얀 꺼풀들이 일어나 있는 못난 손이었다. 


“우리 아가도 손이 참 고왔는데” 

안타까운 말투로 말씀하셨다. 


손 만이 아니다. 입술 역시 하얗게 메말랐다. 예쁜 아기를 보고 있으면 입을 맞추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어른의 립밤을 바른 입술로 아기에게 뽀뽀할 순 없지 않은 가. 잘 만든 유부초밥같이 통통하게 차오른 아기의 볼은 너무나 하얗고 연약해 보인다. 잘 때 한 번이라도 뽀뽀해주기 위해선 립밤 역시 서랍에 넣어 둘 수밖에 없었다. 가뭄이라도 난 듯이 퍼석한 입술일지언정 마음이 동할 땐 언제라도 엄마의 무해한 입술을 댈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잠시 버스를 타고 나가다 손잡이를 잡고 있는 이름 모를 여성의 손이 알록달록 예뻐서 한참을 바라봤다. 임신 전 네일케어를 주기적으로 받던 나였다. 그렇게 가만히 여성의 손을 보다 불현듯 부럽다 생각이 스쳤다. 왜 인지 어린 줄로만 알았던 나의 손과 마음마저 점점 낡아가는 듯 해 마음이 약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와 놀고 있던 아기를 번쩍 들어 안았다. 

“어디 보자~우리 아기! 잘 있었어?” 

엄마를 알아보고 금세 방긋 웃는 아기에게 얼른 뽀뽀해주게 된다.

역시 네일아트나 립밤 정돈 포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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