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익-딱!
모유수유는 정말 힘들다. 특히 나에게는 더욱 그랬다. 자랑은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나이에 접어든 이후 단 한 번도 술을 끊어본 적이 없다. 즐거울 때나 속상할 때, 그냥도 상관없다. 시원하게 한 잔 마시며 대화하다 보면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술을 좋아하는 엄마라면 나의 이야기에 적극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나지만 열 달 동안의 임신 기간 동안 술 냄새도 맡지 않았다. 무알콜 맥주를 마신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무알콜 맥주를 꺼려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알코올이 없는 술을 마시기 싫다는 것. 또 한 가지는 무알콜 맥주에 약간의 알코올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0.0% 무알콜 맥주가 있고, 미량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는 맥주가 있으니 무알콜 맥주를 선택하는 엄마라면 잘 알아보고 구매해야 한다.
예전에 나와 자주 술을 즐기던 친구에게 임신하고 술 못 마시니 힘들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임신을 하고 나니 술 생각이 싹 사라진다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항시 느글거림, 더부룩함을 느끼는 종류의 입덧을 경험하며 청량한 맥주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늦은 시간 남편과 TV를 보다 배우 공유가 광고에서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는 장면이 나오자 “우-와-아-아 좋겠다!”하고 소리 지른 적도 있다.
출산을 하고 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절대 오산이다. 임신 기간보다 모유수유 기간에 조심해야 할 음식들이 훨씬 많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 인스턴트류나 과자 같은 가공식품 같은 것들도 자주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 뭐 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빨갛게 잘 익은 김치를 먹은 날, 곧바로 아기의 엉덩이 역시 빨갛게 변한 것을 보고 백김치나 물김치만 먹기 시작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술은 입에 대지 않았지만, 육아의 고된 노동 속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언제나 그리웠다. 그렇지만 모유수유는 길어야 1년일 테고, 둘째 계획이 없는 한 남은 평생 동안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 마실 수 있는 것이 술이다. 게다가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싶다는 생각에 출산 초반 잘 나오지 않던 모유 양을 늘리는 데 성공해 아기에게 충분히 줄 수 있게 됐다. 이런 이유로 단유는 나에게 아직 먼 얘기라 생각해 왔다.
어느덧 6개월이 지나고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모유 섭취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 번에 들이켤 수 있는 양이 점점 늘어난 아기는 나의 모유만으로 배불리 섭취하기 어려웠고, 분유 보충을 해줘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젖을 서서히 떼게 되는데, 점점 모유 먹는 텀이 길어지다가 간식으로만 마시게 됐다. 조금 더 지나니 아기는 완전히 분유와 이유식 만으로 식사를 해결하게 됐고, 출산 8개월 차에 자연스레 모유수유를 중단할 수 있었다.
아이가 모유를 먹는 모습은 정말 예쁘다. 조그만 얼굴에 앙증맞은 입을 아기새 마냥 벌려 가며 힘껏 모유를 빨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그래서 막상 수유를 중단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마지막 수유가 될 것을 예감한 날, 나는 모유를 먹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 순간을 머릿속에 평생 기억해 놓고 싶었다. 아기의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모유를 주던 짧은 순간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리고 온전하게 느껴졌다. 아마 나는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울고 달래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던 특별한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단유에 성공한 그 주 주말, 편의점에 들러 만원에 맥주 4캔을 사 왔다. 맥주를 고르는 마음이 어찌나 설레던지 구매하는 행위만으로 벌써 신이 나더라. 아기가 완전히 잠든 저녁, 남편과 간단히 맥주를 한 잔 했다. 치익- 딱. 시원한 유리잔에 맥주를 가득 채우곤 아기가 깰까 속삭이며 그동안 고생했다 건배하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크아-역시 이런 맛이었지. 남편과 함께 맥주를 즐기는 처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 맛은 여전히 시원하고 청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