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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pr 19. 2016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서평02 치유할 수 없는 '열대'를 품고 살아가는 남과 여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1989년,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다 라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의 생을 마감했다. 41년 동안 모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망명 생활을 이어갔으나 그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다. 90년대 말 뒤늦게 소설 <열정>이 이탈리아에서 출간되면서, '위대한 유럽 작가의 재발견', '우리는 벌써 오래전부터 그를 알았어야 했다', '우리는 앞으로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등과 나란히 그를 거론하게 될 것이다' 등의 찬사가 끊이지 않으며 20세기를 대표하는 대문호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194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발표된 소설 <열정>은 수 십 년이 지나, 2001년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이 책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깊은 심연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소설로의 몰입감과 집중도 높은 스토리, 삶에 관한 진지한 성찰, 인간만이 지닌 고독과 회한, 전 생애를 걸쳐 흘러가는 세 남녀의 장엄하고 유구한 인생이 눈 앞에서 소용돌이치듯 펼쳐진다.


41년 만에 도착한 편지, 마지막 저녁을 함께 했던 그곳에서의 운명적 재회


운명의 '순간'을 직감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하여 소설 <열정>은 운명의 장난처럼 가혹하게 평생을 기다리며 살아온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로 되돌려 주고 있다.




"그 인간에게서 무엇을 원하세요?" 유모가 물었다.
"진실" 장군은 말했다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아니 모르네"

"하지만 현실은 알고 계시잖아요"
"현실은 진실이 아닐세"
"현실은 일부에 지나지 않아. 크리스티나도 진실은 알지 못했어
콘라드가 알고 있을 걸세. 그래서 지금 그에게 알아내려는 걸세"

"무엇을 알아내겠다는 말씀인가요?'
"진실"




퇴역 장군 헨릭은 41년 만에 친구 콘라드로부터 편지를 받고, 운명적인 재회를 맞이한다. 굳게 방치되어 왔던 집 안의 시계는 생명을 얻어 거꾸로 시간을 되돌린다. 주인공 헨릭과 콘라드는 어린 시절 사관학교에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우정을 다짐한다. 그러나 성장 과정 속에서 서로의 집안 배경과 기질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콘라드가 헨릭에게 '크리스티나'를 소개하면서, 이 세명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강을 건너게 된다.




"콘라드는 절대로 훌륭한 군인이 못 될 거다"

"왜죠?"

"그가 다른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지"




크리스티나와 결혼한 주인공은 행복한 결혼을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 부럽지 않은 신분과 재력을 타고난 주인공에게 크리스티나는 완벽한 여성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인생은 잔인하다. 숲 속으로 콘라드와 함께 사냥을 떠난 주인공은 직감한다. 사슴을 쏘는 척하면서 그가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음을, 비록, 물증이 아닌 심증으로 끝난 미수의 사건이었지만, 그날 저녁 식사를 마지막으로 콘라드는 영영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 다음 날 친구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주인공은 이윽고 나타난 크리스티나와 마주치며 현실로 나타난 악몽 같은 비극을 경험한다. 그의 믿고 지냈던 절친과 사랑하는 아내가 깊은 관계의 연인이었음을 말이다.




"나는 자네가 빌려서 꾸미고 내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집에 어느 날 갑자기 서 있네. 그리고는 눈을 의심하네. 자네도 알겠지, 그 집은 하나의 예술품이었네. 크지는 않았어. 일층의 넓은 방 하나와 위층이 작은 방 두개가 전부였지 그러나 가구, 방과 정원, 전부 예술가가 아니면 그렇게 꾸밀 수 없었을 게야. 그 순간 나는 자네가 진실로 예술가라는 것을 깨달았네. 그리고 우리 다른 사람들 틈에서 자네가 얼마나 이방인이었는지도 깨달았지."




"오랫동안 열대에 있었던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의심을 받아 (...) 그는 끝까지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남아 있네. 열대를 체험했기 때문일세. 저항할 수 없는 이 두려운 전염병,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흔히 그렇듯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 전염병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네. 열대는 병이야. 열대병은 치유할 수 있지만, 열대는 절대로 치료 불가능해"




열대로 떠난 친구 콘라드. 그와 함께 열대에 관련된 책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크리스티나. 왜 하필 열대여야만 했을까. 치유할 수 없는 두려움을 안고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침묵의 대가는 얼마나 쓰라려야만 했던가. 내 안의 어떤 것을 태우기 위해서, 절대로 치유할 수 없고 아무도 알아채서도 안 되는 내 안의 불씨, 그것이 열정이라면, 열대야 말로 나의 열정을 숨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콘라드가 떠난 뒤, 남겨진 주인공과 크리스티나는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떨어져 지내며 침묵한다. 두 사람 모두 떠난 이를 기다리며 그 긴긴 세월을 참고 인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두 사람은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아픔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기에, 크리스티나는 결국 죽음의 길을 택하고야 만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서 이렇게 건재할 수 있었던 게야'

이 순간 두 사람은 기다림이 있었기에 지난 몇십 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단 한 가지 과제를 준비하는 데 평생을 바친 것 같았다. 콘라드는 자신이 언젠가 돌아가리라는 것을, 장군은 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순간을 위해서 살았다.




사랑과 우정 모두에게 배반당한 주인공 헨릭은 복수를 꿈꾼다. 그리고 끝까지 기다린다. 오직 재회만을 꿈꾸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바스러질 것처럼 오래되고 사슴뿔과 박제한 동물들이 걸려 있고, 이 집을 지켜오며 살았던 선조들의 액자를 걸어놓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골짜기와 작은 시가지, 커다란 침실과 식당이 모여 있는 하나의 거대한 성 안에서 온갖 세상 풍파를 온몸으로 겪으며 묵묵히 자신의 운명을 기다린다.




"그래 나는 복수를 원하네. 지난 사십일 년 동안, 세상이 잠잠할 때도 전쟁이 날뛸 때도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살았네. 오로지 그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어. 다행이랄까, 그 때문에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 이제, 내가 바란 복수의 순간이 왔네. 답변을 하기 위하여, 나와 함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하여, 자네가 세상을 가로질러 전쟁을 뚫고 폭탄으로 오염된 바다를 넘어 이곳 범행 장소로 돌아온 것이 내 복수일세. 그것이 바로 복수지. 그리고 이제 자네가 답변할 차례네"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때론 모든 질문을 침묵으로 답할 수 있다. 진실은 결코 '말'을 통해 전해지지 않는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다. 한 없이 나약하고 연약하여 언제 쉽게 부서지고 무너질지 모른다. 혹은 그리하여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도 있다. 소설의 전체 줄거리는 통속적이면서도 단순하다.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세 인물의 과거와 사랑, 우정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생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대처하는 방식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게.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정열은 그렇게 심오하고 잔인하고 웅장하고 비인간적인가? 그것은 사람이 아닌 그리움을 향해서만도 불타오를 수 있을까? 이것이 질문일세. 아니면 선하든 악하든 신비스러운 어느 한 사람만을 향해서,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정열적일 수 있을까? 우리를 상대방에 결합시키는 정열의 강도는 그 사람의 특성이나 행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일까? 할 수 있으면 대답해주게'




그의 작품 중에서 <유언> <결혼의 변화> <이혼 전야> 등 대부분이 남녀 관계의 미세한 균열과 기질적 차이로 인하여 벌어지는 갈등과 파경을 그린 이야기들이 대다수다. 비록 작가 자신은 평생을 한 명의 아내와 백 년 해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마도 개인적인 경험을 반추하며 관찰한 식견과 깊은 통찰력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영원토록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어쩌면 '인간이란 본디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평생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경험을 통해 완전한 인간이 되어간다'가 아녔을까. 마치 아래 대사처럼 말이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마련이야.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될 일이지. 그런 사람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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