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매일이 지옥 같을 때

by 테나루

나의 아침은 매번 고통이었다. 알람소리가 고통스러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기필코 집에 돌아와 반드시 일찍 잠에 들겠노라 다짐을 매번 하지만 이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이 반복적인 하루들이 미쳐버리게 지루하기만 하고 따분했었다. 집에 가도 할 것도 없으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어떤 때는 집에 있음에도 입버릇처럼 집에 가고 싶다고 말을 할 정도였다. 거기서 무엇인가 잘못됨을 느꼈다. 밖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들이 그저 견디는 순간인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득 나의 삶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병원 방사선사로 근무를 할 때의 나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대학원을 꿈꾸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같은 말을 하였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 삶은 원래 따분하고 재미없는 거야. 거기서 버텨서 안정적인 정규직을 노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라며 나를 말렸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반항심이 휘몰아쳤다. 모두가 이렇게 산다는 게 정말일까? TV나 YouTube를 보면 삶을 즐기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했었다. 마치 노홍철 님처럼 말이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도전하기 시작했다.


‘24년 겨울캠프 대학청년 1박 2일’ 프로그램에서 임형규 목사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딸과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딸이 겨울나무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물었다.
“아빠, 왜 저 나무는 죽었어?”
“아냐 그건 겨울이라 그래”
“아니야 죽은 거야, 아빠가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가 앙상해지고, 나무가 메마르면 죽은 거라고 여름에 그렇게 말을 했잖아”. 그는 어린 딸의 질문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린아이가 봤을 때 죽은 나무와 겨울나무는 똑같아 보이는 거구나. 그리고 나니, 생명력의 차이가 아주 사소한 데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명력, 즉 살아있다는 것은 Again이다. ‘다시’가 있다면 그건 살아있는 것이다.
매일매일이 반복된다는 것이 지옥 같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매일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고 말이다. 갑작스럽게 기독교적인 이야기를 하여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의 삶은 어떠한지였다. 여기서 말하는 매일매일이라는 단어가 기회처럼 느껴지는가? 혹은 지옥처럼 느껴지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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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청년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적성과 맞다고 생각하는가?. 맞다면 어떤 점이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는가?. 반대로 만약 맞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맞지 않다고 느끼는가?. 문득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삶이 놀이터처럼 재미있게 사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이 지옥과도 같다면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알쓸 신잡에 유시민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이 일과 맞는지 안 맞는지가 정말 궁금하다면, 직장 동료나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나 해보자는 것이다. 바로 일을 하는 내 모습을 아무 때나 10번 정도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이다.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하거나, 일에 몰두했을 때나 등등 다양한 사진 중에서 세 장 이상 웃는 모습이 없다면, 그건 본인과 맞지 않은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방사선사로 일을 했을 때 환자를 대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육체적인 한계가 느껴졌다. 또 환자 협조가 어려운 환자를 대할 때마다 상사의 눈치와 스스로의 능력 부재가 나를 옥죄어왔다. 그렇게 나는 점차 웃음을 잃어가게 되었다. 항상 환자를 향해 웃으며 일을 하던 유재홍은 점차 웃음기가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 것이다. 오전 시간 내내 시계를 바라보며 점심시간을 기다렸고, 그 이후에는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토요일 저녁부터 다가오는 월요일이 싫었다. 이대로는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모두가 말렸지만 대학원에 진학을 하였다. 그곳에서 나의 지도 교수님과 여러 교수님들, 그리고 소중한 학교 사람들을 만나 지식적, 인격적으로 많은 것을 성장시켰다. 그 경험을 토대로 나는 당당히 졸업하였다.


그렇게 나는 지금 그토록 원하던 세브란스병원에서 의학물리사로 근무를 하고 있다. 결국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똑같지만 과거와 다른 삶이란 것을 많이 느낀다. 오히려 새벽 4시에 기상을 해야 함에도 피곤함보다는 성취와 설렘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과거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크게 바뀐 것은 없어 보인다. 그저 마인드의 차이일 뿐인 것 같다.

우리의 매일매일이 지옥 같다는 것은 내일만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서 설렘이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만약 반대로 스스로 목표를 세워 삶을 재미있는 게임처럼 만든다면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을까?. 즉 ‘again’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다.


반복되는 매일이 지옥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순간으로 생각해 보자. 나 또한 무계획으로 그저 이끌렸던 삶을 살아왔었다. 하지만 미래를 계획하고 나니 점점 성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게 되고, 나 자신을 보호하는 힘이 생기게 되었다.

간혹 그렇게 사는 삶은 지치지 않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주도적으로 하루를 계획하는 사람과 안 한 사람의 결과는 뻔하다. 무계획 속에서 그저 주어진 대로 일 처리를 하는 사람과 본인이 생각하여 자신의 목표에 필요한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의 성장 속도는 당연하게 다를 것이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과거의 나는 출근길에서는 피곤함으로 인해 전철에서 제발 앉아가기만을 기도했다. 만약 앉는 데에 실패한다면 숏츠와 릴스를 보며 시간 죽이기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또 퇴근하고 나서는 집에 돌아와 핸드폰만 했었다면 이제는 헬스장에 들러 주 3회 운동을 한다. 그리고 남은 2일과 주말의 시간을 빌려 이 글을 쓰고 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쓰고 돌아온다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므로 자아실현을 하고, 퇴근 후에는 뿌듯한 마음으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제2의 삶은 ‘작가로서의 삶’이다. 직장인이면서 작가로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꿈을 위해 매일 내가 계획한 시간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주변 사람들은 자기 계발과 공부에 대해서 하나같이 동일한 답변을 한다. ‘이제 그만 공부하고 싶다. 편하게 살고 싶다.’라는 것이다. 아시는 교수님도 나이가 60 임에도 아직도 공부를 해야 함에 절규를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 것만 같다. 그렇다면 공부라는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부’라는 단어가 주는 그 답답함을 이해한다. 하지만 가볍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술을 공부하여 칵테일 바를 차리는 것을 꿈을 꾼다. 혹은 커피를 공부하여 바리스타를 꿈꾸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공부라는 것의 이미지를 바꿀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흔히 이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일에 권태감을 느끼는 것을 본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더 이상의 일에 대해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럼 언제가 재미있었냐는 질문에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를 말한다. 상사에게 자주 혼이 나지만 어느 순간 인정을 받기 시작했을 때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는 권태감을 느끼지 않는 환경을 우리는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배움이란 것을 멈추면 인간은 권태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생명체이다. 따라서 끝없이 우리는 성장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번 주변 사람들을 보자. 누군가는 자신의 일에 있어 자부심을 가지고 도전적으로 많은 것을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매번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직장에서는 둘 다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 개개인으로서의 삶의 관점에서 본다면 안정적으로 주어진 일만 한다면 인간은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사실인 듯 보인다.


그럼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주변에 혹시 자신이 닮고 싶어 하는 인물이 있는지를 말이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들을 보면서 누군가에게는 인품을 배우고 싶고, 누군가로부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을 닮고 싶다. 분명 당신의 주변에도 이렇게 훌륭한 점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 것이다. 만약 자신의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다음으로는 그 일이 당신에게 맞는지를 물어보자. 그 일을 통해 당신은 성장할 수 있는지 말이다. 당신에게 있어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자극이 부족하기 때문에 권태감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 나의 경우에도 나의 주변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기에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엇이든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라고는 말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가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각각의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차이가 있는데 어찌 그리 배우려는 태도에만 매몰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알아야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흥미의 동물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알아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책상에 앉아 핸드폰은 넣어두고 종이 하나를 꺼내었다. 거기에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적었다. 현재 나의 상황과 직장에 출근할 때의 기분, 그곳에서의 나의 생각등 모조리 적었다. 그 후 나는 무엇을 바라는지를 찾아갔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되어 출퇴근에서 벗어나고 싶다.’부터 시작하여

‘출퇴근만 안 하면 정말 행복한가?.’

‘그럼 여유로운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싶지?.’

‘운동도 좋고 여행도 좋아. 근데 여행은 자주 가면 재미없던데.’

‘그럼 나는 어떨 때 뿌듯함을 느끼고 있지?’

‘난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해.’

‘그럼 독서모임을 만들어볼까?.’

라는 생각의 꼬리를 그대로 적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애 처음으로 세웠던 계획이었다. 무심코 적었던 말들을 행동으로 옮겨 현재는 자그마한 독서모임을 운영 중에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한번 종이를 꺼내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어떤 삶을 바라는지를 말이다. 이러한 사소한 행위가 당신의 삶을 수동적인 형태에서 자발적인 형태로 바꿔주는 밑거름을 다지게 된다. 즉 결론적으로 지옥 같이 반복적인 삶으로부터 당신을 구해줄 것이다. 못 믿겠다고? 한번 쭉 따라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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