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푸엔테라레이나 - 에스텔라 21.9km
오늘도 든든히 챙겨 먹은 아침, 어제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놓길 잘했다. 하몽에 계란만 있어도 풍성해지는 한 끼. 유난히 맛있었던 아침식사였다.
이른 7시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몇몇 순례자들이 보여 안심하고 걷는다. 직접 말을 걸진 않았지만 같이 걷는다는 유대감이 혼자 걷는 순례길에 마음의 풍요를 채워준다. 골목에서 아침 일찍 오픈한 베이커리를 지나쳤는데 아침만 안 먹으면 바로 들어갈 뻔했다. 순례길 새벽의 풍경은 특히 더 오감을 깨운다.
마을을 나오는 길. 조그만 아치형의 문으로 나오는데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기분이다.
멀어질수록 마을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마법이란. 마을 안에 있을 땐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멀리서 볼 때 더 빛나는 순간이 있다.
해가 나오는 시간. 딱 나오기 직전의 모습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한 순간이다.
뒤에서부터 성큼성큼 날 따라잡더니 몇 마디 나누었던 순례자. 나는 영어로 말하는데 계속 스페인어로 대답했다. 표정을 보며 유추하면서 못 알아들은 말도 있었지만 그 순간 너무 즐거웠다. 무엇보다 긍정에너지가 느껴져서 너무 좋았고. 나도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을까? 질문해 본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순례자.
다음 마을이 나와 쉬고 있는 순례자들
그렇지만 저는 패스할게요.
포도밭을 지나가고 있는 중
탁 트인 풍경에 정말 생각 없이 걸었다.
중간에 카페에 들렀다. 빵들이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길에서 캐나다에서 온 심리학자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쭉 같이 걸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며 카페에서 친구들도 소개받았다.
드디어 에스텔라에 도착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로부터 22km 정도 된다. 오늘도 마을에 들어오며 무사히 걸었음에 감사한다.
숙소에 도착하니 공용주방이 꽤 괜찮았다. 그리고 이전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면이 있어서 장을 보고 파스타를 해 먹기로 했다.
탄산수, 소시지, 토마토소스, 그리고 남은 재료로 내일 아침 샌드위치까지 생각해서 빵을 샀다.
소시지가 독일 소시지였는데 진짜 육즙이 팡팡.... 너무 맛있었다. 토마토소스에 다른 소스들보다 야채도 훨씬 더 많이 들어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다 먹고 동네 산책 중 마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전거도 타고 광장을 신나게 누비는 풍경에 괜스레 내가 동심으로 돌아간다.
메뉴판처럼 그림을 그려놓아 너무 예뻤던 문이다.
한 골목에 만화가게 사장님이 유리에 드래곤볼 캐릭터를 그리고 계셨다. 일본 만화를 좋아해 만화가게를 차리셨다고 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걸로 일까지 하는 사장님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옆에 지나가던 아이에게도 그릴 기회를 주었는데 쭈뼛쭈뼛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눈치를 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글을 쓰며 순례길을 돌아보는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맞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