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팜플로나 연박
오늘은 팜플로나에서 연박하는 날이다. 다른 순례자들이 일찌감치 알베르게를 나설 때 나는 침대 속에서 조금 더를 외치며 미적거렸다. 내 위엔 침대가 없어서 밤새 빨래를 2층 침대에다가 말렸다.
열심히 또 짐을 싸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 앞 잠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정보를 알아볼 때 이 풍경을 자주 본 것 같다.
다른 순례자들이 이 앞에서 찍은 사진을 나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며 순간을 오롯이 느낀 것 같다.
월요일 아침, 청소차가 청소하는 모습과 아침 일찍 어디론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곳도 누군가에겐 고향이고 일터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앞뒤로 가방을 메고 나는 카페 이루냐로 향했다.
이곳은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곳이라고 한다. 1888년에 파리마노 이루냐 와 그의 와이프가 카페를 열었고 카페는 빠르게 예술가와 지식인,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또 도시에서 전기를 사용한 첫 번째 가게로 스페인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장소이다.
20세기 초 카페 이루냐는 건축가 루이스알라드렌에 의해 아르누보스 스타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여기서 아르누보 스타일이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행한 예술 및 건축 스타일로, 자연에서 영감 받은 유기적이고 곡선미가 특징인 스타일이다.
식물, 꽃, 곤충 등의 자연 형태를 모티프로 한 장식이 많고, 기하학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을 사용해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카페의 장식은 화려한 디테일과 가구들로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되었다.
오늘날 2개의 방이 있는데 하나는 주요 카페가 있는 큰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대리석 테이블, 조명기구, 큰 거울이 있는 작은 공간이다.
이때 카페메뉴도 확장되었고, 다양한 커피, 차, 페이스트리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후 카페 이루냐는 팜플로나에서 인기 있는 모임 장소가 되었고 도시의 문화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여행자들이 찾는 코스가 되고 많은 방문객들이 팜플로나에 머물며 이곳의 역사와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들르곤 한다.
이들 중 일부는 헤밍웨이의 1926년 소설 <The Sun Also Rises>에서 카페를 보고 온 사람들이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이 팜플로나 이루냐 카페에서 매일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헤밍웨이는 팜플로나를 방문할 때마다 자주 이루냐에 왔고 이곳엔 그를 위한 노벨 문학상 코너가 있다.
나는 오픈하자마자 카페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큰 거울이 미추는 공간에 압도되었다. 나는 카페콘레체와 토르티야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오픈한 지 30분도 안 돼서 사람들이 금세 차기 시작했다. 처음 맛보는 토르티야. 오믈렛보다는 좀 더 두꺼웠고 재료는 감자, 계란으로 간단했다. 계란 케이크랄까? 감자가 있어 너무 가볍지도 않고 아침식사로 너무 좋았다.
또 뜨거운 카페콘레체 한입에 속이 풀렸다. 바게트 빵 한 조각도 같이 제공되는데 마트에서 산 하몽과 치즈로 나만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두 시간 정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오늘은 사립 알베르게에 묵을 예정이어서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는다. 그래서 시내 구경을 가기로 했다. 맨 처음 간 곳은 자라. 스페인에서 시작된 자라는 뭐가 다른 게 있나 궁금증을 안은채 방문했다.
물론... 짐을 늘릴 수 없어 못 사지만 아이쇼핑이라도 즐거우니깐.
자라는 현대적인 디자인과 빠른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패스트 패션의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최신 유행을 빠르게 반영해 짧은 기간 안에 옷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많은 카피 논란도 있다.
독일에서 살 때 자라를 처음 접했는데 자라에서 쇼핑을 많이 했다. 7-8년 전에 산 옷도 지금까지 잘 관리하고 입고 있어서 나는 개인적으로 자라를 좋아한다.
스페인의 자라는 독일, 미국, 한국의 자라와 별반 다른 게 없었다. 나중에 마드리드에서 자라에 방문했을 땐 좀 깜짝 놀랐다.
자라에서 옷보다 사람들의 패션에 눈길이 더 갔다. 특히 중년에서 노년층의 패션이 내 시선을 확 사로잡았는데 화려한 패턴과 비비드 한 컬러를 믹스매치해 자기 자신을 돋보이는 코디를 한 아주머니, 할머니들을 많이 발견했다.
유행을 좇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알고 쇼핑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컬러와 패턴을 좋아하는 것 같다.
거리 구경 재미가 쏠쏠하다.
바람막이밖에 가져오지 않은 나는 며칠간 걸으며 경량패딩이 필요하고 느껴서 데카트론에 들러서 다운점퍼를 구입했다.
데카트론은 프랑스 글로벌 스포츠 용품 브랜드 및 유통업체로, 다양한 스포츠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순례길에서 필요한 스포츠용품이 있다면 큰 도시에 데카트론을 방문하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낮에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녀도 될 정도다. 걸으니 더워서 중간에 벤치에 앉아 물도 마시고 사람 구경도 하고 스페인 거리를 즐겼다.
점심 겸 저녁으로 타파스를 먹고 싶어 검색하다가 발견한 'Bar gaucho' 맛있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두시 즈음 갔는데도 사람이 꽉 차 있었다.
다른 한쪽은 사람이 너무 빽빽해 보지도 못했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맛있어 보이는 양송이, 트러플감자, 문어 타파스를 시켰다.
혼자서 좀 많은 양이었지만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은 걸 어떡해.. 계속 먹으니 느끼한 감이 있었지만 맛있었다. 여러 명이서 나누어 먹으면 딱 좋을 맛이다.
다음에 팜플로나에 또 오게 된다면 재방문 의사 당연히 있다.
오렌지 주스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마켓에 오렌지 주스를 사러 갔다. 팩에 들어있는 종류도 가지가지 스페인 오렌지 주스는 진짜 최고..!
오렌지 주스에 'con pulp'는 과육이 포함된 오렌지 주스, 'sin pulp'는 과육이 없는 오렌지 주스다. 나는 개인적으로 과육이 포함된 걸 좋아한다.
오늘의 숙소, 침대가리개도 있어 프라이빗한 느낌이 있다. 아늑하고 좋았다. 한 공간에서 몇 십 명씩 자다가 4명으로 확 주니 조금 더 안정감이 있다고 할까.
공용 거실도 마치 우리 집 거실처럼 편안한 분위기여서 순례자들과 삼삼오오 모여 작은 이야기들을 계속해 나간 밤이다.
순례길의 일출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
달콤 쌉싸름한 새벽 공기에 물들어 가는 주황빛 하늘은 매일 아침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