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시간들
연보라의 꽃들이 오밀조밀하게 피어날 때 향기롭다. 라일락의 꽃 색을 닮고 꽃내음은 은은하다. 향기로 기억하는 그리움이 아득하다.
단오가 되면 동네 여자아이들이 그네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네를 타면 모내기를 막 끝낸 논 위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힘차게 도움닫기를 끝낸 그네는 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치고 올라갈 듯 공중으로 빨려 들었다. 저 멀리 있는 산이 가까워지고 몸이 느끼는 긴장감은 하늘로 날아가고픈 마음을 다 잡아 손에 땀이 배어났다.
웃고 떠들며 놀았던 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부끼며 하늘 높이 오르던 그네 위의 꿈들은 어떻게 되었나. 한 마리 새처럼 날아오르던 소녀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변하여 있을까. 아련하게 한줄기 빛처럼 보여 오는 기억 속으로 멀 구슬 꽃은 향기로 그윽하고 .
늦깎이로 들어온 학교. 강의시간에 교수님이 교목이 무엇인지 물었다. 멀 구슬이라고 대답했다. 친구를 만날 때면 과학기술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만나곤 했다. 우연히 교목이 적힌 표지판을 보았다. 교화는 철쭉이었고, 교목은 멀 구슬이었다. ‘교목을 왜 멀 구슬로 정했을까 그다지 쓸모가 없는데’ 속으로 되 뇌인 것 때문에 생각이 났다.
오월 멀 구슬 나무가 향기를 흩날린다. 송이 송이의 꽃들이 뭉쳐 피어 수수꽃다리 같다. 꽃다리 보다는 더 가늘고 섬세하다. 꽃의 길이도 약간은 긴듯하고 향기도 은은하다. 열매는 상상의 동물 해태의 먹이로 쓰였다고 전해지는데 옛날 사람들도 열매가 아까워서 붙여놓은 이야기가 아닐까. 노란 열매는 한 겨울에도 떨이지지 않고 나무와 하나가 된다.새봄이 와 새잎 돋을 때서야 자리를 내어준다.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방울처럼 매달리는 것인가.
꽃은 향기로 말한다. 아름드리 멀 구슬 나무가 오래된 추억을 끄집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