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은 나무에서 피고, 땅에 떨어져서 한 번 더 핀다는 어느 책의 연서가 생각난다. 남쪽이 고향이면서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노 작가의 정서는 다르다.
겨울잠을 자고 기지개를 켠 화분에 연두의 선이 그어지다 멈춘다. 다음날 조금 더 긋는다. 식물도 보드라운 살빛과 모양이 빛나는 때가 있다. 자세히 보아야 한다. 햇빛의 어루만짐으로 색칠되어 간다. 물먹고 빛 먹고 바람에 흔들리는 화초들.
삼월이 오자 비좁은 집에 살던 백합 식구들을 분가시킨다. 겹겹이 끌어안고 새우잠을 자고 있다. 화분을 총출동했다. 알뿌리가 큰 것은 큰 것 끼리, 작은 것은 작은 것 끼리 잠이 깰까 봐 아기 잠재우듯 한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을 뜬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기분 좋은 낯빛이다. 작은 것들은 올해는 꽃을 보여 주지 못하겠지. 한해 더 자라야 한다. 꼬물꼬물 올라오더니 초록의 꽃을 피워 문다. 저것들을 누가 꽃이 아니라고 할까. 내게는 꽃이다. 그들이 피워낼 색색의 꽃들까지도 아롱거린다.
겨울이 따뜻해서 말리지 못한 수국의 잎들이 빳빳하게 깃을 세웠다. 초록 꽃다발이다. 삼 년으로 접어드는 우리 집살이. 내가 키우니까 내 살이. 두 그루 사 와서 꽃 보고 팔월 말쯤 가지 끝을 잘라냈다.
재작년 늦여름에 쌀알처럼 머금었던 눈들이 겨우내 가지에 새끼손톱만큼으로 붙어 있더니 날 풀리자 번쩍 뜬다. 세를 불리더니 지난여름 내 얼굴만큼의 진분홍 꽃송이들이 덩실덩실 했다. 한 화분 두 그루 꽃나무.
이른 봄 분가시켜주었더니 네가 이쁘니, 내가 이쁘니 아웅다웅한다. 흙이 산성이면 파란 꽃을, 알칼리 성이면 분홍 꽃을 내민다. 한 개의 화분에는 명반을 사다가 뿌려주어야겠다. 핑크만 올려내는 아이들을 위해. 유월이 오면 또 한송이에 꽃 나의 수국.
꽃은 두 번 핀다. 잎으로 한번 꽃송이로한번. 초록 다이아몬드처럼 햇빛을 받으면 이파리들이 반짝거린다. 한 개도 같은 잎이 없다. 꽃숭어리다. 빛을 머금고 살포시 실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훅 간다. 피어 있는 꽃을 사는 것은 반만 보는 것이다. 꽃의 일대기를 다 보아야 꽃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싹을 내밀고 줄기를 올리고 몽글몽글 어느 날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좁쌀이 나타난다. 시간이 가고 날이 가면 색을 입히고 모양을 갖춘다. 인내의 시간이다. 손을 내밀어 꽃잎을 벌려주고 싶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뜸을 들이는지. 다 잊고 내 일 하다 보면 어느 날 짠하고 예쁜 웃음 보여준다. 그 기쁨은 기다린 사람만의 것이다.
초록 꽃이 주는 향기에 취하는 날들이다. 봄은 꽃을 피워내느라 몸살을 하는데, 우리는 코로나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다. 마스크 쓰는 것도,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초록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이 지루한 싸움을 이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