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자

#16.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by 도슨트 춘쌤
149p, 자크 루이드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01..jpg

자크 루이드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01.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택배가 도착할 시간을 예상해 본다. 퇴근 시간에 맞춰 도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진다. 내가 그렇게 원했던 물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날 설레도록 만드는 것이다. 며칠을 기다렸던가? 이 순간을 기대하며 스마트폰을 얼마나 만지작거렸나. 이 물건과 만남을 위해 몇 번이나 쇼핑몰을 들어갔고, 확인했다.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빼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화면 속 물건은 자크 루이스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처럼 나를 지배했다.


다비드는 역사화를 웅장하게 그렸던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가 그린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를 정복하던 순간을 묘사했다. 백마 탄 나폴레옹은 영웅의 화신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나폴레옹은 이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어 몇 개를 더 주문했다고 한다. 당시, 나폴레옹은 유럽인들에게 영웅으로 인정받았다. 전제 군주정을 몰아내고, 만인을 억압에서 구원할 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쇼핑몰에서 봤던 물건의 자태는 최소한 나에게는 나폴레옹처럼 보였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문 앞에 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리고 택배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상자 안에는 또 다른 작은 상자가 있었다. 포장지를 뜯고, 상자를 연 순간 나는 큰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짜증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분명, 쇼핑몰에서 봤던 사진의 모습과 색감이 너무나도 달랐다. 속은 기분이었다.

151p, 폴 들라로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50..jpg

폴 들라로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50.


19세기, 유럽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제 군주정을 몰아낼 혁명가로 여겼던 나폴레옹은 스스로 군주가 되었다. 그리고 황제가 되어 유럽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황제에서 폐위되어 변방에서 죽어갔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 그려진 폴 들라로슈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다비드의 그림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백마가 아닌 노새를 타고 넘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나에게 있어 택배 상자의 개봉이 그랬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역할이란 화장을 지우고 마주하는 나의 민낯. 그 안에는 초라하고 겁 많은 한 중년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과포장된 택배 상자처럼, 나의 보잘것없음을 다른 것으로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포장지보다, 나의 본모습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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