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무엇일까? 그리스 속담에 그 해답이 있다. ‘그림 하나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Μια εικόνα ισοδυναμεί με χίλιες λέξεις)’ 그렇다. 그림은 사실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보물창고다. 다양한 정보와 연결할 수 있는 이미지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와 노트북 화면 속 아이콘과 같다. 아이콘을 누르면 세상의 모든 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아이콘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그런데 이 아이콘의 모티브는 흥미롭게도 그림에서 기원했다. 서양 중세시대 성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이콘이라 불렸다. 이콘은 그리스어 에이콘(eilon)에서 왔는데, 뜻은 상(像), 꼴(image)을 의미한다. 주요 이콘의 소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이었다. 이들을 이콘으로 그리며 가지고 다녔던 것은 신앙적인 숭배 의식도 있었지만, 부적처럼 자신을 지키는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콘은 지배층에게도 매우 필요한 것이었다. 특히 기독교의 교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성직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전달 수단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은 글을 몰랐다. 심지어 정치 권력자들도 문맹이 많았다. 이들에게 이콘은 손쉽게 기독교의 교리를 전달할 수 있는 표현 방법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콘은 당시 중세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자 표현방법이었다.
이처럼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여러 정보를 담고 있는 보물창고다. 하지만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물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가 필요하다. 그 열쇠가 바로 리터러시다. 리터러시는 다른 말로 문해력이라고 한다. 문해력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림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리켜 시청각 리터러시라고 한다. 시청각 리터러시가 있어야 그림에 담긴 여러 이야기와 정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림은 그냥 시각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 이미지를 이콘으로 만드는 힘이 시청각적 문해력인 것이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방황하는 이유도 이런 시청각 리터러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결코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림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시청각 리터러시가 필요하듯,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인생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리터러시가 바로 ‘역사’다.
역사도 그림처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나열된 지식만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죽은 정보에 불과하다. 이것은 그림을 단순히 어떤 화가가 그렸는가에 대한 정보만 알고 그림을 바라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스위스의 유명한 석학이자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과 그림의 필요성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술은 목적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며,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가르쳐 준다. 그러나 그곳에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단서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 그림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이미지를 담은 매체가 아니다. 그림은 그 이상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존재이다. 컴퓨터와 노트북의 아이콘처럼 말이다. 그림은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리터러시가 맞지만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한 것처럼 한계도 분명하다. ‘방법에 대한 단서를 주지 않는다’ 그 단서는 역사가 줄 수 있다. 역사는 그 자체로 삶의 방향을 담고 있는 나침반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단서’가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 역사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역사를 ‘이콘’처럼 봐야 하는 이유다. 이콘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자들의 열정을 배우고자 했던 그리스도인처럼. 그림만이 가지고 있는 그 감정적 에너지를 역사에 접목해보면 어떨까?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인생이란 목적지를 제대로 갈 수 있는 적절한 나침반이 되어주지 않을까?
여러모로 우리의 인생은 그림과 같다. 다양한 색으로 그려진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인생은 다양한 인간관계와 시공간 속에서 여러 만남이 만들어낸 사건들이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을 읽기 위해서는 시청각 리터러시가 필요하듯, 인생을 읽기 위해서는 역사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능력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
이 능력을 얻기 위해 그림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역사의 사례를 통해 답하며, 삶의 통찰력을 발견해보고자 한다. 각자가 가진 ‘시선’에서 질문을 던져보며 함께 역사 리터러시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