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역사의 알레고리

by 도슨트 춘쌤

베네치아 학파의 위대한 화가, 티치아노. 그는 ‘신중함의 알레고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왼쪽의 노인은 화가 자신 티차이노이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중년은 자신의 아들오라치오이며, 오른쪽 끝에 있는 젊은이는 자신의 조카 마르코다. 각 인물 밑에는 인물과 연관된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티치아노 밑에는 늑대, 오라치오 밑에는 사자, 마르코 밑에는 개다. 그림의 위에는 글씨가 있는데, “과거에서 배워, 현재에 신중하게 행동하면, 미래를 그리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image10.png 인생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는 역사와 동일한 알레고리다.

이 그림의 구성을 다시 연결해서 보자. 그러면 티치아노의 알레고리는 명확하다. 알레고리 자체가 우의, 풍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티치아노는 과거-현재-미래를 자신-아들-조카/늑대-사자-개와 동일시했다. 즉 과거=타치아노(노년)=늑대=경험과 기억을, 현재=오라치오(장년)=용기와 행동, 미래=마치오(젊음)=개=미래의 희망을 의미한다.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는 시간의 단계에 따라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인생은 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는 인생을 위한 나침반이자, 위기의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도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 19로 인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길을 가야 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묻고 있다. 인생은 각각의 순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길을 잃어버린 시대에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질문을 우리 역사에서 탐색해보자.

영원할 것 같았던 통일신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96 각간의 난이 일어나더니, 혜공왕이 시해당했다. 이후 통일신라는 혼란한 ‘하대’의 시대를 맞이했다. ‘중대’의 강력한 왕권은 무너졌고, 지방은 통제불능에 빠졌으며, 백성들의 삶은 처참했다. 통일신라 ‘하대’는 이전 ‘중대’의 시스템이 모두 무너져 버린 시대였다. 통일신라는 그렇게 몰락해갔다. 통일신라의 몰락은 지금 우리와 유사한 모습이 많다. 코로나 19로 인해 기존의 세계질서는 무너져가고 있다. 금융화, 도시화, 지구화는 한계에 봉착했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해답을 역사에서 찾을 수 없을까? 나는 이 해답을 우리 역사 속 통일신라 하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기는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통일신라 하대의 호족들이 그랬다. 그들은 지방에서 세력을 장악하고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세력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갔다. 호족들에게 있어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함은 성장의 자양분이었다. 호족이 성장하면 할수록 사회는 더욱더 큰 혼란에 빠졌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세력 또한 호족이었다. 이 혼란을 해결하는 것. 당시 호족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었다.

image12.png 위기 속 리더들, 그들은 각각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한다. 이 모든 것을 연결할 때, 역사가 된다.

이때, 3명의 리더들이 등장했다. 견훤, 궁예, 왕건이다. 모두 출중한 능력을 갖춘 호족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후백제, 후고구려, 고려를 건국하며 혼란한 시대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이들과 함께 몰락해가는 통일신라의 왕을 포함시켜 후삼국시대라 한다.


이 후삼국시대의 인물들의 삶은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와 닮아있다.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과거에 머무르는 자다. 과거 화려했던 통일신라의 위용과 역사에 의존할 뿐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빨 빠진 늑대에 불과했다. 신라 왕실의 후손이라는 과거의 유산만이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어수단이었을 뿐이다.


상주 농부의 아들이었던 견훤. 스스로의 노력과 뛰어난 자질로 그는 호족이 되었다. 그리고 후백제를 건국했다. 그는 현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사자와 같은 용맹함은 다른 호족들을 압도했다. 그는 철저하게 현실주의자였다. 몰락해가는 신라를 습격해 왕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경순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삼았다. 그에게 있어 통일신라는 지나간 과거를 상징할 뿐이었다. 견훤은 현실만 바라본 자였다. 현실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 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통일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에만 머무른 자였다. 결국 힘만을 추구했던 그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배신당했다. 그리고 왕건에 귀부 하여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죽었다.


궁예는 미래를 바라봤다. 신라왕조의 출신이었지만 철저하게 신라를 부정했다. 세달사의 스님으로 시작하여 초적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가 왕이 되었다. 그가 활동했던 지역은 주로 옛 고구려 영토였다. 견훤과 마찬가지로 그 지역의 사람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후고구려를 국호로 삼았다. 하지만 얼마 안가 마진(마하진단이라는 범어로서 마하는 큰, 진단은 동쪽을 의미한다), 태봉(태-서로화합하는, 봉-영토)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것은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자신만의 왕조와 미래를 위한 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미래만을 바라봤다. 스스로 미륵불이라고 외치며, 신이 되고자 했다. 그는 미래에서 온 구원자임을 이야기했을 뿐, 현실의 고통은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미래만을 바라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시간과 가치를 아우른 이는 누구였을까? 바로 왕건이다. 왕건은 강력한 해상세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호족이었다. 그의 강점은 바로 이 세 시간대를 모두 통합하는 능력이었다. 궁예와 다르게 왕건은 고구려 유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국호를 다시 고려로 정했다. 그리고 몰락해 가는 통일신라를 존중했다. 과거를 바라본 것이다. 왕건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현재를 위해 힘을 키웠다.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견훤을 압박하고, 호족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불려 나갔다. 백성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즉위 초 3년간 세금을 면제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전란의 시대. 세금을 걷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판단이었다. 마지막으로 궁예와 다르게 그는 통일을 미래의 가치로 내걸었다. 왕건이 궁예를 몰아낼 때 가장 큰 명분 중 하나가 궁예의 폭정과 통일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20여년간의 기간 동안 궁예는 통일을 할 수 있는 의욕을 보여주지 못했다. 왕건은 궁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통일을 미래의 가치로 내세웠다.

그렇게 왕건은 궁예, 견훤, 경순왕과 다르게 과거의 역사성과 현재의 용기와 현실정치, 미래의 통일을 향한 가치를 모두 제시했다. 그렇게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의 왕이 되었다.

image11.png 왕건의 통일은 신중함의 결과였다.

왕건은 티차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가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안목과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왕건의 가문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왕건의 가문은 해상 호족이었다. 또한 고구려의 유민이면서도 당나라 황제의 후손임을 자처했다. 당시 동아시아의 다양한 세력들과 만남을 통해 왕건의 가문은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고 있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당나라는 이미 무너졌고, 5대 10국의 혼란한 상황이 중국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한 혼란한 여파는 통일신라에게도 미쳤다. 왕건 가문은 이러한 변화를 파악했고, 대처했다. 자신보다 힘이 강했던 궁예를 섬기면서도, 자신의 강점이었던 해상세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 강점을 통해 후백제의 후방이었던 나주를 점령할 수 있었다. 상인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융통성은 많은 호족을 포섭했고, 연립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왕건은 현실적으로 가장 강했던 궁예와 견훤을 무너뜨리고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국 왕건은 철저하게 자신의 위치를 분석하고 위기상황을 활용할 줄 알았다. 강점을 키워 기회를 만들었고, 약점은 최소화시켜 위험을 낮췄다. 이를 위해 상황에 따라 과거-현재-미래의 가치를 적절하게 사용했다. 왕건의 이러한 모습은 코로나 19 앞에 선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과거-현재-미래에서 무엇을 보고 사는가? 이 세 가지를 모두 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 한쪽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코로나 19로 인해 더 이상 이전에 누리던 ‘당연’ 한 것들을 누릴 수 없다고 한다. 코로나 19가 끝난다고 해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과거만 봐서 안 되는 이유다. 과거의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현재의 문제를 과학기술과 자본으로만 해결하려 해서도 안된다. 견훤처럼 현재만을 바라본 ‘힘’은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코로나 19의 백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코로나는 또다시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만 봐서도 안된다. 코로나 19 이후 낙관적, 비관적 입장에서 세상을 예측하고 준비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궁예가 아무리 자신을 미륵이라고 했지만, 태봉 백성들의 삶은 극락이 아니었듯이 말이다.


이 세 가지를 다 보기 위해서는 왕건의 ‘적정 역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 중에 적정기술이라는 말이 있다.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해서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기술로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매몰된 지나간 이야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밝힐 수 있는 ‘적정 역사’가 되어야 한다. 분명 왕건은 ‘적정 역사’를 알았던 인물이 분명하다. 우리에게 있어 코로나 19는 자신의 위치에서 ‘적정 역사’를 바라봐야 함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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