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팟

#3. 소소한 시선이 닿는 순간

by 도슨트 춘쌤

다윤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주말이 되면 아내와 교대하여 육아를 했다. 나는 주로 새벽 시간 담당이었다. 2시간 내로 일어나는 다윤이를 맞이하기 위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지 않고 귀에 에어 팟을 끼기 시작했다. KCM처럼. 에어팟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유튜브 속 이야기, 음악을 들으며 나는 다윤이를 돌보면서도 여러 예능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귀 좀 열어!" 아내의 외침이 들렸다. 아내는 나의 이런 모습에 불만이 가득했다.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다윤이를 보는 이 시간이 조금은 지루해서 시간을 그냥 보내기 싫어서 에어팟을 계속 끼고 있었던 것인데, 어느덧 이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자연스럽게 아내가 이야기할 때, 나는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아내의 화는 그런 상황을 만든 나에 대한 경고였다.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에어팟을 오래 끼고 있어, 귀도 매우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어팟을 끼고 사는 삶이 불통과 귀의 통증을 불러온 것이다.

사본 -__ (3).jpg 빈센트 반 고흐, <귀를 자른 자화상>, 1889.

얼얼한 귀를 만지다, 반 고흐가 생각났다. 자신의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고갱과 다툰 후 스스로 귓불을 잘랐던 반 고흐. 이후 그린 자화상의 모습은 세상과 단절되었던 반 고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초점을 잃은 눈빛에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고, 붕대로 가려진 귀는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오직 입에 문 담배만이 그의 기분을 즐겁게 해 줄 뿐이다.


‘영혼의 화가’로 잘 알려진 그는 왜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을까? 그것은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된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팔리지 않는 그림, 동생에게 빌붙어 사는 비참한 심정, 거기 다 함께 살았던 고갱과의 불화는 반 고희가 처한 심리적 절벽 상태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했다. 그것이 그의 그림 <귀를 자른 자화상>이다. 반 고흐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쓸쓸하게 죽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서 그는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다. 조금만 더 세상에 마음을 열었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항상 자신만의 에어팟을 끼고 산다면,

누군가의 조언, 누군가의 아름다운 이야기, 반드시 들어야 할 여럿 소리 들을 놓치게 된다.


자신만의 에어팟에 갇혀 타인의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멍멍한 귀와 불통에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뿐이다. 나도 그렇다. 에어팟을 자꾸 끼다 보니, 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주민센터에서 다윤이의 출생신고를 할 때 에어팟 낀지도 모르고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얼마나 황당한 광경인가?

내 귀에 낀 에어팟을 빼면 될 텐데 상대방 보고 목소리를 크게 키워 달라고 하니 말이다.


소통은 내가 막은 귀의 에어팟을 먼저 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내 삶 속 에어팟은 무엇일까? 나만의 소리에 갇혀 나는 살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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