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산이’

#4. 소소한 시선이 닿는 순간

by 도슨트 춘쌤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주인님들이 산다. ‘러시안 블루인 줄 알았던 코렛’ 산이와 ‘시고르자브종’ 강이다. 둘 다 유기묘 출신이지만, 우리 집에서는 왕처럼 지낸다. 특히 산이는 황제처럼 산다. 황제처럼 사는 산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한다.


평소 산이는 하루 내내 잠을 자거나, 밥을 달라고 할 때만 기어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어' 나온다는 점이다. 평상시는 대부분 누워있다. 기어 나오기 전까지, 산이의 대부분 누워있는 모습이 산이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기본 모습이다.


산이에 대하여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아 봤다.

#검은색 #건방진 눈빛 #여유 #도도한 자세


이런 키워드를 뽑아서 산이를 다시 보니, 이 그림이 떠올랐다.

그림은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 마네의 문제작 <올랭피아>이다. 그림은 시대의 문제작이었다. 사실 패러디 그림이기도 하다. 원작은 베네치아의 거장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이다. 하지만 비슷하면서 두 그림은 완전히 다르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문제작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존의 그림 속 도식을 깨 버렸기 때문이다.

Edouard_Manet_-_Olympia_-_Google_Art_Project.jpg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티치아노가 그린 그림 속 여자는 '비너스'의 자세를 하고 있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학설이 있어 여기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미의 여신' 비너스'를 생각했다. 왜냐하면, 비너스의 자세로 포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기지만, 이 자세 덕분에 사람들은 이 그림 속 여자를 ‘비너스’로 인식했다.


반면,

마네의 그림 속 여자는 실제 당시 살았던 매춘부를 모델로 했다. 파격이자 도전이다. 당시 사람들의 도식을 깬 것이다. 그림의 제목 자체도 그렇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당시 흔했던 매춘부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또,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도발적 자세와 발밑에 있는 '검은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있어, 기존의 인식(재수 없는 존재, 여성의 성기) 등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Tizian_102.jpg 티치아노 베첼리오,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4,

‘비너스 자세 = 비너스 = 여신’이라는 도식은

마네에 의해

비너스 자세 = 비너스 = 현실 속 매춘부= ???

이렇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인식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마네의 <올랭피아>는 내가 산이를 보며 떠 올린 키워드와 유사하다.

산이는 나에게 있어, <올랭피아>이다. 기존의 인식을 깨는 그림처럼, 내가 가진 고양이의 인식을 깬 녀석. 이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듯,

나 또한 산이를 키우면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갔다.


산이를 가지고, <올랭피아>를 떠 올리니, 제법 흥미로웠다. 삶 속에는 이렇게 '발견'하고 '연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 날 설레게 만든다.


육아에 지칠 때도 있지만 잠깐 머리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면 이전과 다른 여러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산이와 <올랭피아>를 통해, 내 삶 자체가 미술관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때, 조금은 뒤로 물러나 인생을 바라보자. 미술관 속 그림을 보듯. 그리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자.

그러다 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순간과 감정들이

어느 순간 내 인생이란 미술관의 '명화'가 되어 있지 않을까?

산이가 갑자기 고마워졌다. 사료 한 번 더 주고 쓰담쓰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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