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밑에 써져 있는 문장이 재미있습니다. ‘Ceci n'est pas une pipe’ 해석하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글을 써 놓았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입니다.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예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유명하죠.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다니? 이상한 그림이네요. 화가는 무엇을 의도한 걸까요?
바로 그 질문들을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서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그림의 본질을 고민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죠.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상당히 철학적인 화가이기도 합니다. 본인 스스로 그림으로 철학을 하는 철학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이 그림을 봐주세요. 이 화가는 왜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한 것일까요?
파이프는 담배를 피우기 위한 도구잖아요. 그런데 그림 속 파이프는 담배를 피울 수 없어요. 그러니 파이프를 그렇지만 실재로는 아니라는 뜻 같아요.
파이프는 담배를 피우는 도구여야 하는데, 그림은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에 파이프가 아니라는 말이네요. 저도 동의합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 아무리 사실적이라도 실재는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름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름은 순우리말로서, ‘무엇이라고 말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자로는 ‘名’이라고 부릅니다. 저녁 석(夕)에 입으로 말하는 것(口)을 의미하죠. 저녁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찾으려면 불러 식별했습니다. 보이지 않을 때 간절히 부르던 것. 그것이 바로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의 본질을 찾아는 행동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이름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이 그림을 보겠습니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