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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봉녀 Aug 19. 2021

'딩크'여서 사표 내기 쉽다고요?

무자식, 상팔자일까 아닐까

"너, 딩크여서 그래!"

 

친구가 '훅' 들어왔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서로 무서울 게 없던 시절, 그러니까 우리 나이 17살에 만나 그로부터 20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같이 웃고, 울고, 마시고, 해장하고, 다시 마시고를 함께 해온 전우나 다름없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하고 사표를 내기까지 17년 동안 단 일주일의 '직장 공백' 없이 달려온 나의 오피스 라이프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내가 습관처럼 내뱉던 '사표 낼 거야'라는 주문을 마침내 행동으로 옮기자, 이렇게 말했다.


"너, 딩크여서 그래!"


이어진 말.


"애가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아무래도 아이가 없으면 돈 들어갈 곳이 적으니까."

"무자식 상팔자라더니, 그래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부인할 수 없는, 부인하고 싶지도 않은 사실이다. 맞다. 


나는 딩크(DINK)이다. 처음부터 계획이 다 있던 건 아니다. 훗날 결혼이란 걸 한다면 아이를 낳을지, 말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다. 다만 연애를 하다 보니 결혼이 하고 싶어 졌고, 지금의 남편과 미래를 구상하면서 '서로가 원하는 걸 주저하지 말자'는 데 뜻을 모았다. 먼저 제안을 한 건 나였고, 당시의 연인이자 지금의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다. 결혼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은 내가 제안하기 전부터 이미 딩크를 바라고도 있었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원하는 바가 같았다. 서로에게 충실하고,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하고자 하는 새로운 일이 생기면 미루지 말자는 뜻이 통했다. 결혼하고 나서 때때로 '우리는 딩크족이에요'라고 밝힐 일이 있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아하게 바라봤다. 남의 시선일 뿐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부모님도 그런 우리 뜻을 존중하셨고(속으론 많이 속상하셨겠지만) 결혼 뒤 한 번도 아이 문제를 입으로 꺼내지도 않으셨다. 진짜, 단 한 번도. 리스펙!


딩크족이어서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딱히 떠오르는 답은 없었다. 


주변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도 여럿이고 사랑스러운 조카도 셋이나 되지만, 자녀 있는 부모가 느끼는 희로애락이나 나의 삶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어떤 선택이든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고, 내가 선택한 일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책임을 지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오랫동안 해온 직업을 버리고 '일단 멈춤'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친구의 말처럼 "딩크여서" 마음이 가벼웠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단 돈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다달이 고정으로 들어가는 돈이 거의 없다 보니 '안 버는 만큼 덜 쓰면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물론 '자발적 백수'가 됐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까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에 과감히 회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제2의 삶을 시작하려는 나의 의지를 조금 닭살 돋지만 '꿈'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꿈을 갖는 데는 나이, 상황, 돈, 시간 따윈 불필요한 조건일 뿐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딩크여서 수월한 것들이 있다고 인정하지만 한쪽에선 이상한 감정도 동한다. 사표를 내기 전까진 전혀 예상치 못한 마음이라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 그건 일종의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로 주저 없이 '워킹맘'을 꼽곤 했다. 비록 딩크를 택했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 이리만치 치열한 삶인지 동료들을 가까이 지켜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학교에 입학해서, 직장을 떠나는 선후배들도 숱하게 봤다. 실력을 인정받고 일 욕심도 많은 사람들부터 떠났다.


아쉬웠고 안타까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가 인사의 전부일 뿐이었는데도, 내가 사표를 내고 나니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육아의 부담으로 먼저 직장을 떠난 바로 그 동료들이었다. 서로 조금씩 다른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하고 싶은 걸 찾겠다'는 나의 사직 이유가 왠지 배부르고 한편으론 게으른 사유처럼 느껴졌다. 


그런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동하는 이유 역시... '딩크여서' 그렇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고루한 명제가 과연 나에게도 적용될까. 아직은 모르겠다. 딩크여서 수월하지만 딩크여서 죄책감이 들고, 딩크이기에 불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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