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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01. 2022

6개월간 삼시세끼 같은 것만 먹으면 생기는 일

슬픔의 5단계(2) -분노

'죽음 연구가' 엘리자비스 퀴블러 로스는 자신의 책인 <죽음의 순간(On Death And Dying)>에서 한 임상연구를 통해 죽음의 과정이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5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이론인 죽음의 5단계 이론을 발표했다. 이 즈음의 나는 아마도 '분노' 단계를 겪고 있었을지 모른다.






새로 시작한 치료는 정말 끔찍했다. 글을 쓰려고 당시 기억을 상기할 때마다 그 고통이 떠올라 아직도 몸서리를 칠 정도로. 그냥 맞는 주사도 아픈데 목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모든 척추에 한 땀 한 땀 주사를 맞아야 했다. 자율신경이 흐르는 통로인 척추의 위치를 정상화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주사의 목적은 일부로 염증을 일으켜 회복하는 과정에서 인대가 튼튼해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간과했다. 이미 3개월간 내 몸은 자생하는 능력도 잃어버릴 만큼 허약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맞을 때마다 나는 건선이 심해지고, 생리를 뛰어넘거나, 온몸이 더욱 간지럽고 염증이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멀쩡하던 목을 살짝 아래로 숙일 때마다 찌릿하고 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저 내 몸이 더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비싼 돈만 들었던 그 치료를 중단해버렸다.


그렇게 정신 차려보니 벌써 6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역겨운, 똑같은 밥을 삼시세끼 먹으며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임한 모든 고통스러운 치료들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성의 끈이 끊어졌고, 참아왔던 분노가 속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왜 대체 내가 이런 답도 없는 병에 걸려야 하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나보다 더한 사람들도 배 터지게 먹고 속 편하게 잘만 사는데 나는 왜 이 꼴이지?
왜 저 사람들만 행복해 보이지?
이렇게 노력했는데 도대체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때의 난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주저앉아 울다가 갑자기 분노하기도 했다. 하필 걸려도 원인도 답도 없는 난치병에 걸린 사실이 너무도 억울했다.


중간에 간절한 마음으로 다른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나 단호박, 계란 등을 시도해봤지만 하루종일 온 몸이 간지러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분노와 우울과 슬픔이 배가 되었다.


밖을 지나가다 맛있게 먹는 사람들만 봐도 분노가 끓어올랐다. 피치 못하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 괜찮다고 했지만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감이 나를 더욱 미치게 했다. 먹지 못하는 나를 앞에 두고 "어떡하냐~"라고 말하며 우걱우걱 누구보다 맛있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음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저 화를 쏟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사람의 3대 기본 욕구인 식욕을 박탈당하니 마치 영혼이 빠져버린 인간 같았다. 가장 쉽게 충족할 수 있는 큰 즐거움이 사라지니 웬만한 일에 즐겁지 않았다.


또한 커피 한 잔도 먹을 수 없으니 집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강제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감정을 환기할 기회가 줄어들어 더욱 피폐해져갔다.


거의 모든 순간과 시간에 우울하고 화가 났다가 불행하다고 느꼈었다. 때론 당뇨 식단이라도 허락된다면 먹고싶을 만큼 부러웠다. 더욱 무서웠던 건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어떤 치료에 희망을 걸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깊고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 홀로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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