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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01. 2022

모든것이 무너져도 감사할 것은 있다.

슬픔의 5단계(3) -타협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서러움과 분노를 쓰레기 던지듯 던졌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여전한 몸뚱이로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한바탕의 난리 후 내게 찾아온 것은 '후회'와 '회개'였다.





모든 억울함과 분노, 막막함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호소한 후 힘이 빠질 때쯤, 비로소 나는 그간의 행실을 돌아보기에 이르렀다.


나는 언제나 건강할 줄 알았는데, 난치병은 당연히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교만한 마음이었구나. 그때 조금만 더 나를 챙길걸. 그때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걸. 그때 조금만 더 마음씨를 곱게 쓸걸. 그때 조금 더 감사할 걸.

그동안의 내 모습을 돌아보며 '정말 멈춰야만 했던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던 교만한 마음, 불평이 가득했던 마음, 여유 없던 마음들. 스스로는 멈출 수 없었던 그 생각의 방향을 대수술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동안 내가 보내왔던 일상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모든 음식을 아무 문제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 강한 소화력을 가졌던 것. 잠을 잘 자는 것. 쉬면 피곤이 풀리는 것. 밖에 나가서 간식을 사 먹는 것. 먹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껏 밖을 돌아다니며 날씨를 즐길 수 있던 것.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것. 지인들과 식사를 하며 즐겁게 교제를 할 수 있는 것.


무의식 중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쳐온 모든 순간과 자유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큰 착각이고 교만이었다. 동네를 걷다 보면,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모든 축복들을 바라보며 나는 혼자 거리를 걸으며 수도 없이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마음에 '감사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건강, 직장, 평범한 일상을 잃었지만 그래도 아직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이제라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대로 슬퍼하고 분노만 하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서점에서 바로 노트 한 권을 구매하고 그날 바로 첫 감사일기를 적었다. 그 내용은 누군가 보기엔 참 작고 소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그 당시 내가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 감사 제목이었다.


1. 오늘도 건강한 눈을 주셔서, 푸른 자연을 보고 행복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2. 멀쩡한 두 다리로 느적느적 산책할 수 있는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3. 낮에 산책할 때 적당히 시원한 바람을 주셔서 걷는 동안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4. 정신 차려보니 요즘 천식으로 힘들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5. 내가 먹을 수 있는 쑥을 직접 캐다주시고 나를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해주는 친척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6. 요즘 잘 못 먹어도 비교적 잠을 잘 자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7. 산책하는 동안 새소리를 들으며 정겨운 우리 동네의 매력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은 어색한 마음을 뒤로하고, 감사하는 습관을 만드는 일에 첫 발을 들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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