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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Jul 19. 2020

#1 처음 사랑을 기억하겠다

소중했던 너와 나의 처음을 잊지 않겠다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그 상투적이고 촌스러운 표현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당신은 참 보기 드물게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의 나는 참 모난 사람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세상은 모든 것들이 처음과 달리 변하고 퇴색하는 모순덩어리의 연속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는 말이다.


예전의 나는 상당히 시니컬한 성격이었기에 '평생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문장을 가슴속에 품고 제 몸에 힘을 주며 살아왔다. 항상 예민하고 각성된 상태였던 터라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갔고, 주물러도 좀처럼 풀리지 않을 정도로 몸마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표정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짧은 인생 경험만으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것은 변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상황도, 관계도, 때때론 사람도. 인간에 대한 기대 따위는 없었다.

기대하는 모든 것들은 나를 실망시켰다. 따라서 기대하지 않음으로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웹툰 '여중생 A'의 한 장면



그때 네가 나타났던 거다.

세상을 어디까지나 아니꼽게 보던 그때의 나에게.


당신과의 만남을 반추해보면 조금은 밋밋했고, 또 한편으론 특별했다. 애초에 경계심이 많은 나는 쉽게 마음을 여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겉으론 상냥하게 굴었다.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므로 학습 사회성으로 굳이 마찰을 만들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은 드러난 대로 믿는다. 그 속에 감추어진 행간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

내 인상만큼이나 차가웠던 날.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차디찬 바람에 얼굴이 난도질당하는 듯했다. 카페에서 내가 봤던 너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다. 애초에 너랑 나의 감정선에 접점은 없을 거 같았다. 한데 그런  알게 되고 벌써 계절이 6번이나 바뀌다니. 인생이란 참 모를 일이다.


너를 묘사하자면 마치 욕조에 담긴 따뜻한 물 같았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너는 마치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설탕 같았다. 그런 너로 인해 나도 입욕제처럼 조금은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빈틈없는 냉정함은 한쪽으로 집어치워 버리고 말이다.


우주를 떠다니듯 너에게 표류하고 싶었다.

그저 잔물결에 몸을 맡기고 복잡한 생각 따위는 최대한 유보해버리는 거다. 그렇게 형성한 은하에 행성이라곤 너와 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따금씩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며 서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던 나를 위해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우산을 씌워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던 너.

나에게 샛노란 프리지어 꽃을 선물했던 너. 내 마음이 가장 가난던 날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나 위로해줬던 너.

편의점 벤치에 앉아 겨우 캔맥주 하나를 사서 밤새도록 인상파 화가에 대해서 토론했었던 우리.


 우리만의 크고 작은 블록들을 쌓아나갔다.

애초에 급할 게 없었기 때문에 차근차근 쌓아 올린 젠가 탑은 무게중심도 단단했고,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너의 첫인상이 나에게도 안 좋았듯 너는 조금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었다. 안 좋은 평가도 있었지만 직접 보고 들은 게 아니면 좀처럼 맹신하지 않는 나로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귀로 생생하게 들은 네가 진짜다. 호기심 많은 나는 의구심이 들면 항상 너에게 질문했고 그때마다 너는 시간을 아끼지 않고 기꺼이 대답해줬다. 돌다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두드리고 확인하며 밟아온 우리의 관계는 무척이나 견고했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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