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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pr 21. 2021

이해인- 오월의 시

젊은이여 욕망에 어두워 생명력을 낭비하지 말자

군 시절 화장실에 앉아서 즐겨 읽던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가 있었다.(물론 이 좋은 잡지는 지금도 매달 발행되고 있다) 힘들었던 시절 잠깐의 자유와 사색을 즐길 수(?) 있었던 그곳에서 볼 수 있었던 잡지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에세이가 있는데 그것이 이해인 수녀의 에세이였다.

삶은 '오해와 이해의 연속'이라는 수녀님의 말씀이 어찌나 와 닿았는지 비록 에세이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만은 나이가 오십을 향해가는 지금도 마음에 새겨두고 오해가 생기면 가급적 상대방의 마음으로 이해하려 스스로를 다독이는 위로의 말로 나에게 남아있다.

이해인 수녀는 우리가 해방되었던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6.25가 일어났던 1950년 납북되어 어머니와 함께 인천과 서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 중학교 시절 부산으로 내려가 김천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가톨릭 수녀가 되고자 했던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수녀원에 들어가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시(詩) 쓰기를 즐겼던 수녀님은 1975년 필리핀의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졸업논문이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김소월의 시를 비교 연구한 "에밀리 디킨슨과 김소월의 자연 시 비교 연구"였다고 하니 문학 특히, 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것을 몸소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활동하는 작가가 아니고 작업 자체가 수녀원의 구도자이기에 국내 문인(文人) 과의 특별한 교류는 없는 듯 하나 2007년 작고한 피천득 작가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여 그의 장례식 때 조시(弔詩)를 낭독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오늘은 이런 이해인 수녀님의 '오월의 시'를 감상하고자 한다.

살아생전 많은 교류를 했던 피천득 시인이 유독 좋아했다던 계절 5월. 60대 피천득 시인이 막 30대가 된 이해인 수녀를 처음 만나 그녀를 5월에 비유했다고 하는데 이해인 시인은 5월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차분한 마음으로 감상해보자.             


                                                      오월의 시


                                                                   -이해인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오월

                                      호수에 감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 내는 오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내용이 참으로 독특하다.

보통 5월 하면 우리는 푸르러 가는 녹음과 만발한 장미꽃을 떠올리며 샘솟는 생명력을 노래할 텐데 이해인 수녀님은 오히려 그런 생명력에서 삶을 관조하는 지혜를 배울 것을 권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첫 연부 터 수녀님은 이렇게 말한다.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5월 초록의 서정시라면 역시 활발한 생명력의 서사일 것이다.

그런 날 수녀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보라고 한다.

여기서 어머니는 우리의 생명력을 있게 해 준 태초의 그 무엇을 표현했을 것이다.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일 것이고 무신론자에게는 내가 표현한 태초의 그 무엇에 대한 구체적 시어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수녀는 넘치는 생명력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그 답을 찾기를 권합니다. "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이런 구절이 우리의 생명력을 헛된 욕망에 낭비하고 있지 않는지 자문할 것을 권하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신다.

"당신의 생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자녀 되게 하십시오"

넘치는 생명력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욕망으로 인하여 자신을 해치지 않고 진정한 사랑과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이해인 수녀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세상 만물을 소생케 하는 5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햇빛 그 햇빛의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게 사랑과 진리와 함께하는 목가적 삶을 추구할 것을 마음 따뜻하게 전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의 시 '오월의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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