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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Feb 18. 2022

유치환- 행복

통영 하면 한국의 나폴리로 유명하다.

사실 통영과 나폴리를 모두 가본 나에겐 외견상으로 도무지 두 곳이 무엇이 닮았다고 하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작은 어선의 항구인 통영에 비하여 나폴리의 항구는 큰 여객선으로 붐비는 그야말로 대항(大港) 그 자체였다. 걸어서 10분 정도면 항구의 끝에서 끝까지 산책이 가능한 통영에 비할 규모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무언가 둘의 공통점이 있을 터인데 곰곰이 생각해도 도무지 감이 안 왔다

 그러고 넘어가서 기억의 저편에 묻힌 이 이야기가 문학 특히 시(詩) 문학에 관심이 많은 즈음 통영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통영에서 태어났거나 거주했으며 또한 통영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겠지만 오늘 소개할 청마 유치환을 비롯해 시조시인 김상옥, 김춘수 시인이 통영 출신이며 통영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하는 시인 백석의 마음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래 통영은 항구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그곳을 배경으로 한 시(詩) 작품에 의하여 관념적으로 무언가 신비함이 더해진 그런 곳이었구나!

아~ 그럼 나폴리에는 어떤 문학적 이야기가 있을까?

사실 이탈리아 문학하면 피렌체를 배경으로 글을 썼던 단테밖에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나폴리의 푸른 지중해와 맑은 하늘 그리고 환상적인 섬들 그곳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詩)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름날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듯 쏟아지지 않았을까?

결국 나폴리와 통영은 아름다움이라는 문학적 알레고리의 무수한 영감을 주는 의미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나름의 결론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통영의 작가들의 작품이 더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 같다.


오늘도 두서없는 글이 길었는데 통영 출신 작가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청마 유치환 시인의 '행복'을 감상해 보자.

통영항 전경

 행복

-유치환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숫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비귀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느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中 1967년



읽고 있자니 어느 광고에 나오는 그리스의 섬 산토리니의 작은 우체국 창가에 앉아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를 떠오르며 미소 짓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드는 시(詩)이다.

하지만 특히 시(詩)라는 문학 장르는 시인의 삶과 결부 지어지는 현상이 있기에 시에 비하여 무언가 완벽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는 것은 시인 유치환의 삶이 과연 아름다웠냐는 것에 기인함일 것이다.


백석, 정지용, 윤동주 등의 시인의 시가 더욱 감동적인 것은 그들의 삶(生)과 시(詩)가 합일(合一)의 가치가 있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유치환 시인은 친일 문학 의혹이나 이 시 '행복'이 배우자가 있는 유부남이 어린 미망인 여인에게 20여 년간 보낸 5,000통이 넘는 편지 속에서 발굴된 것임을 알기에 진정한 카타르시스의 감정에 도달하기엔 많이 부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물론 목가적일상추구만의 전적인 느낌이다)

젊은 시절의 유치환 시인

시와 관련된 작가의 삶을 차치하고 감상한다면 이 시가 주는 감각적 효과와 감정 순화는 대한민국의 그 어떤 시보다 뛰어남은 누구든 쉽게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수작(秀作)이다.

특히, 3연은 인간사의 고달픔이라는 관념적 사유가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이라는 시각적 효과로 와닿게 하며 삶의 가치를 한 것 고양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 가서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을 마지막으로 전할지언정 그래도 내 마음 다하여 사랑하였음에 아무 후회 없이 행복하였다고 말하는 부분은 무한한 긍정의 힘이 주는 그 용기를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5월의 통영 파아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맑은 마음으로 어느 우체국 창가에 앉아 사랑을 노래하며 삶을 긍정하는 시인 유치환 님의 '행복'을 감상하며 인간 삶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함- 주는 것-에 있으매 대하여 다시금 성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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