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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Dec 22. 2020

정호승- 수선화에게

사람은 본디 외로운 존재이기에 외롭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어요.

이 시를 읽고 나면 우리 자신이 가여워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위안을 얻게 된다.

물가에 홀로 외로이 펴 울고 있는 수선화 같은 우리들에게 시인은 울지 말라고 다독인다.

네가 외로우니깐 사람이오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기에 슬퍼하지 말고 갈 길을 묵묵히 가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을 물가에 외로이 핀 수선화에 비유한 것은 그 옛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미소년으로 많은 소녀들의 흠모를 받았으나 강한 자존심으로 그 누구의 마음도 받아주지 않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부터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벌을 받아 목을 축이러 간 맑은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외롭게 죽은 나르키소스. 누이들이 그를 장례 지내기 위해 그곳에 갔을 때 그의 시신은 없고 그가 죽었던 자리에 눈처럼 하얀 꽃잎에 둘러싸인 노란 작은 꽃 바로 수선화가 있었다고 한다. 시인은 외롭고 힘들지만 자존심으로 인해 힘든 내색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론 이미 무너져 버려 홀로 울고 있는 우리들을 가엾은 수선화라고 말한다.


자신의 모습에 반한 나르키소스(左)와 수선화(右)

시인은 얼마 전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펴냈다.

老 시인은 그 책의 출판 기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혼의 배고픔은 어떤 양식을 섭취해야 한다. 시가 바로 그 영혼의 양식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시도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강조했다.

책 제목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도 담담한 어투로 말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이해를 통해 외로움을 긍정하는 것을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다." 그 얼마나 마음 따뜻한 말인가? 영혼의 배고픔으로 인하여 인간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외로움 즉 삶의 실존적 한계를 깨닫고 이해함으로써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며 삶을 긍정하는 그 힘을 老 시인은 끝까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시 '수선화에게'도 그런 시인 정호승의 따뜻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본디 사람은 외로우니 슬퍼하지 말고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도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너무 슬퍼한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 가슴 애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갈대숲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리고 위대한 신(神)도 가끔은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조차 외로워 나뭇가지에 앉아있고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외로워한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 신(神)이나 그림자, 소리 따위의 자연현상도 외롭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인식이 거두어 드리는 모든 것이 외로움의 현상으로 다가오니 인간 존재는 필시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 예전 뭔지도 모르고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등 멋진 배우들이 출연하고 감독의 심미적 취향으로 인해 그저 화면이 아름다워 보았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 그 영화 속 주인공 아비가 바로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미 주위의 여자들, 즉 소려진과 루루로부터 사랑받고 있었지만 친어머니에게 버려진 트라우마로 있지도 않은 본연적 사랑을 갈구하다 사랑하는 여인들의 맘도 알아주지도 못하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 그 아비는 살아생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기 전에 모가 보이는지 눈을 뜨고 죽을 것이야."

외로운 인간의 삶 그 마지막엔 누구에게나 자비 정도의 사랑은 허락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아비는 기차간에서 총을 맞고 죽을 때 눈을 뜨고 죽지만 그 어떤 사랑도 확인하지 못한 채 외롭게 죽음을 맞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영화 '아비정전'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그리고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세 가지 다른 시기의 다른 예술에서 같은 감흥을 느끼게 된다.

인간 실존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뻔한 결말을 향한 걸음 그리고 마지막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숙명적인 외로움과 그로 인한 불안.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기에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숙명적 인식론을 받아들이며 나의 삶을 긍정하고 오롯이 살아내자는 시인 정호승의 위로가 있는 시 '수선화에게'였다.

나르키소스의 모습과도 같았던 영화 '아비정전'의 아비를 연기한 장국영 그의 삶도 무척이나 외로웠다.

나르키소스의 모습과도 같았던 영화 '아비정전'의 아비를 연기한 장국영 그의 삶도 무척이나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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