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하고 난 몇 달 후 재가 요양보호사 일을 하게 되었다. 3시간 시간제 근로자이지만 어르신의 상황에 따라 휴무가 되는 날도 있었다. 시간제 일은 체력이 약한 내게 잘 맞았다. 더운 여름철이라 청소를 하고 나면 땀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청소를 마치고 어르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조금씩 가졌다. 인지장애(치매) 어르신이셔서 의사소통을 힘들어하실 때도 있었다. 특히 보호자가 없는 날엔 불안감 때문인지 말하기 싫어하셨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 위해 그림책 읽기를 생각해 봤다. 조심스럽게 꺼낸 그림책을 보고 치우라는 말씀은 안 하셔서 조금씩 보여드리기 시작했다.
첫 책은 권정생 글, 김세현 그림 작가님의 <엄마 까투리>였다. 불이 난 산속의 엄마 까투리와 꺼벙이들은 불길을 피해 도망간다. 뜨거운 불에 놀라 엄마 새는 본능적으로 날아오랐다가 아직 날 수 없는 아기 새들에게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더 이상 불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엄마 새는 자신의 날개깃을 펼쳐 아기 새들을 감싸 안는다. 불이 꺼진 후 산에 오른 사람이 새까맣게 타버린 것을 보고 들추자 그 안에서 살아있는 아기 새들이 뛰쳐나온다. 아기 새들은 낮에는 밖에서 먹이를 찾다가 밤이 되면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와 잠이 든다. 날개가 다 자라 클 때까지.
어르신께 그림책을 펼쳐 그림과 함께 짧게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림을 보는 어르신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림책을 다 보고 나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했다. 그림책에서 나온 꿩에 대한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주로 하셨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으셨다. 너무 긴 대화는 힘들어하셔서 곧 일어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림책을 옆에 두고 나간다고 했더니 곧 그림책을 다시 펼쳐보셨다.
그림과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계셔서 다행이었다. 보여드리고 싶은 그림책은 많지만 너무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어르신의 기억 속 어딘가와 닮은 듯한 그림책을 고르며 그림책이 어르신께 작은 즐거움이 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