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걸린 코로나로 우여곡절 끝에 요양보호사 실습을 하게 되었다. 요양보호사가 주로 근무하는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가정에서 며칠씩 실제 현장을 경험하게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이라 하나하나 알려주기보다는 근무 중인 선배 요양보호사님을 관찰하면서 보고 배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론 수업에서 배운 것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론은 이론일 뿐인가 싶은 것들도 있었고 아직 초보자가 하기엔 힘들어 보이는 일들도 있었다.
가장 오랜 기간 실습했던 일은 요양원이었다. 도심에 있는 빌딩 한 층을 쓰고 있는 요양원이었다. 실습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식사 시간 외에는 외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문을 열어달라고, 마스크를 벗고 물을 먹기도 어려울 정도로 긴장하며 지냈다. 혹시나 모를 실수로 어르신께 피해가 될까 실습생 모두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경험이 없는 초보 실습생들은 주로 배정받은 방의 청소나 요양보호사님이 하는 일을 도왔다. 내가 받은 방에는 90대 어르신이 주로 계셨고 100세가 넘은 분도 계셨다. 대부분 와상상태셨고 인지장애가 있으셔서 소통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래도 매일 인사를 드렸더니 아는 체를 하시기도 하셨다. 단 며칠 동안의 실습이 끝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르신들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어르신 중 깨어있는 내내 몸을 힘겹게 움직이는 분이 계셨다. 나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어르신이 침대 밖으로 나오려 하는지 지켜보는 일이었다. 깡 마른 몸으로 온 힘을 써가며 계속해서 침대 밖 탈출을 하려고 하셨다. 다른 분들은 잠을 자는 시간에도 깨어 계셨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 힘들어하셨다. 진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가끔씩 나를 돌아보며 딸 이야기를 하기도 하셨다. 진정될 때면 침대 옆 벽에 있는 꽃무늬를 바라보셨다. 고요한 눈빛으로 오래도록 꽃을 바라보셨다.
어르신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궁금했다. 바깥 도로 쪽 침대에 계셨던 어르신은 항상 밖을 보고 계셨다. 볼 수 있는 거라곤 간판들 뿐인 곳이었다. 나도 함께 간판 거리 풍경을 보면서 어르신의 마음속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다른 방의 어르신 중 한 분도 같은 풍경을 바라보셨다. 그 어르신은 며칠 전의 기억은 잊었을지라도 어릴 적 즐거웠던 기억을 추억하고 건강했을 때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셨다.
요양원 실습을 하면서 늙음에 대해, 특히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나이가 들면 인지장애로 기억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가슴 깊은 곳에는 따뜻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을까. 어르신들은 긴 시간 동안 마음속의 그 기억으로 살고 계신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모이자 그림책을 써 보고 싶었다. 짧은 그림 더미북을 한 권 만들고 나자 깊이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