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마냥 자유로울 줄 알았던 어린날의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고싶은 것을 엄마가 제제할땐 꼭 "넌 아직 어려서 안돼. 어른 돼면 할 수 있어" 라는 말을 덧붙였기 때문일까.
아무튼 난 성인이 되고싶었다. 치킨을 먹고싶으면 부모님의 허락없이 시켜먹을 수 있는 나이. 밤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괜찮은 나이.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원했고 난 초침이 빠르게 움직이길 바랬다. 그렇게 난 지금 성인이 되었다. 어른이 아닌 성인.
이게 함정이다.
초등학교를 다닐때 스무살을 갈망하며 앞으로 7년 남았다는 생각을 했던게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땐 대학새내기가 되어 진탕 술을 먹기도하고 혼자사는 예쁜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하루종일 놀 생각에 공부가 안되던 날도 더러 있었다. 잠들기 전엔 대학교를 가면 시간표에는 절대 아침 수업을 넣지 않겠다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스무살이 됐다고 달라지는건 많지 않았다. 부모님 집에서 생활을하고 어쩌다보니 원하지 않는 대학에 갔다. 전문대라서 시간표는 짜여져있었고, 로망처럼 조금 늦은 시간에 학교를 갔었지만 9시 첫수업은 고등학생때와 크게 달라진 점은 아니였다. 더군다나 출석은 학점과 직결되어서 지각과 결석은 금기시 되었기에 살짝 더 피곤한 감도 있었다. 성인의 첫 시작부터 마음처럼 되는것들은 거의 없었다.
한가지 다른점을 꼽자면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것이었다. 잦은 술자리에 나가 고주망태가 됐고 사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이렇게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술이 넘어가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이 된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왜 자꾸 지구는 도는지 아프다는 거짓말로 아르바이트를 빼볼까 했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출근한 날도 허다하다. 주중엔 학교, 주말엔 아르바이트. 난 정말 처량하게 살고있어! 라는 마음이 들어 울면서 다이어리를 적기도했다. 왜 나는 가난하냐고. 얼른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고싶다고. 결국 또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마 돈을 벌면 다를 것이라 생각했겠지? 진짜 웃기는 이야기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 살짝 피식 웃었다.
사회에 나와서 나의 학력으론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싶었다. 돈을 벌더라도 얼마를 벌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것이다. 4년제 인서울권 대학을 가고싶었던 마음속 욕망이 나를 부추겼다.
'편입하면 너 좋은 기업에 갈 수 있어~'
그렇게 편입공부와 일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큰 도시로 나가야 더 규모있게 공부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난 일에 치여 인터넷 강의만 전전하며 공부를 하는지 일을 하는지. 애매하게 살아갔다. 나는 그렇게 꾸준하거나 성실한 타입은 아니여서 정말 대학을 가고싶었다면 학원이나 기숙학원에 갔어야 했다. 그놈의 웬수같은 돈이 뭐길래 날 늘 애매하게 만들었을까. 불가능이란것은 없단 말 처럼 내가 좀 더 열심히 했다면 편입을 성공시켰을 수 있겠지만 생리도 건너 뛸 만큼 일은 바쁘고 힘들었다. 또 스트레스는 엄청 받는 스타일이라 늘 나를 자책하며 걱정으로 하루를 마치곤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까지 사는데 이정도 고민? 휴식? 가져도 돼' 라는 자기위로를 하며 말이다.
이미 원룸을 구하고 돈을 벌며 독립을 했기에 다시 엄마 아래로 들어가 사는 것은 엄마도 동생도 반대였다. 한칸 남짓한 방도 없는 집에 한창 사춘기였던 동생은 내가 오는 것을 달가워 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직접적으로 다시 본가에 오지 말라곤 하지 않으셨어도 동생 하나로도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나도 돈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가끔 놀러온 동생에게 예쁜 속옷 한벌과 맛있는 음식정도는 사줄 수 있었고 엄마에게 적은 돈이지만 용돈으로 기쁘게 할 수 있었기때문이다. 당연히 나의 도전은 실패했다. 돈을 벌어 편입에 다시 도전하자는 마음으로 주 4일에서 주 6일로 바꾸며 나의 시간과 돈을 교환했다.
지금와서 안 사실이지만 난 전형적인 집순이라서 월세는 내게 가장 가치있는 소비가 됐다. 하지만 당시엔 하루11시간이란 근무시간과 더불어 종종생기는 뺄 수 없는 사회적 약속과 회식등등..덕분에 월세소비는 내게 가장 낭만적이며 낭비적인 소비였었다.
어제가 오늘같고 저번주가 내일같은 이 일상을 더이상은 못살겠다는생각이 들었다.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났다. 괴로움 그 자체였다. 마음이 지옥이었다. 사람들의 모든 말들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들었다. 22살의 나는 더이상 힘들고싶지 않았다. 한달 뒤에 퇴사예정이었지만 새직원이 빨리 구해졌단 이유로 난 5월31일 휴무 전날인 30일에 조기 퇴사를 당했다. 평소 나의 성격이라면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아무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그냥 숨쉬고 싶었다.
나는 그 뒤로 아마 고장이 났었다. 누군가 나를 불편한 말로 괴롭히면 예전처럼 유연하게 넘어가지 못하게 됐다. 그 다음 새로 시작한 일도 사랑과 애정을 담아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집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난 후 나의 인생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애정을 쏟고 노력을해도 결국 남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나의 윗사람들은 내가 노력하는 것들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한번의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그런 것 들이 마찰을 부른다는 것도 알게됐다.
나는 그런 수레바퀴는 되고싶지 않았다. 도저히 이 사회에서 말하는 수긍하고 사는 것을 난 할 수 가 없었다. 세상은 어떤지 궁금했다. 대한민국이 아닌 저 먼 나라는 어떻게 할지. 그렇게 나는 호주로 떠났다.
호주에서의 생활이 매번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지금에서야 나는 그 날들이 미친듯이 그립다. 그들은 조직보단 개인이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몸이 아프면 자유롭게 쉬어갈 수 있고 마음이 아파도 마찬가지이다. 일은 회사에서 끝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근무의 연장선인 회식같은 것은 취급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많이 늦어져서 8시면 닫지만 새벽까지 움직이는 움직이는 곳은 한국이나 중국 가게들 뿐이다. 일하면서 모두들 프로페셔널 하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 그리고 나를 위한 시간들이 중요하다. 직장은 수단일뿐 헌신하지 않는다. (주커버그나 일론머스크 처럼 본인을 표현하는 수단이 직장이라면 다르겠지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부러워 하지도 않는다. 배움과 상관없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회사와 나라에서 그만큼의 보상을 해준다.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나또한 마찬가지이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내가 풍요를 느낄 수 있을만큼 벌 수 있었고 그런 여유속에 나의 취향을 알아갈 수 있었다. 나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 하늘의 아름다움이 감동으로 다가왔던 시간들이 그립다.
어릴땐 무작정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했기에 스무살이 넘으면 어른이 된다고 믿었다. 심지어 학창시절에 썼던 장래희망직업도 그저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일 이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내가 생각한 순간에 닿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더욱더 자신감을 잃고 그저 하루를 보내며 더욱 어린아이가 되어갈뿐.
코로나로 인해 휴식기를 가졌고 마침 지친 나는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냉정하게 나의 인생시계를 살펴보니 아직도 난 새벽이었다. 미라클 모닝을 아는가? 동이 트기도 전의 시간에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난 아직 그 시간속에 있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많구나. 난 아직 어린아이처럼 살아가도 괜찮겠구나. 하고싶은일을 마음껏 하며 아직은 돈이 없어도 젊음은 있기에 내 꿈을 향한 곳으로 걸어가도 괜찮구나!
누군가는 나를 어른이라고 이제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한다며 철이없다고 비난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세상에 사는 나는 해야할 일도 하고싶은 일도 너무 많다. 그래서 난 아직 어리다. 철도 없고 돈도 없지만 세상에 발맞춰 사는 것보다 내 속도에 맞춰 살아가고 싶다. 남들보다 어른이 되는 속도는 느릴지언정 내가 없는 삶을 살아내고 싶진 않다. 난 그저 살아가고싶다. 꿈을 이루는 어른이 될 때 까지 서툴지만 꾸준히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