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했던 나의 19살, 그리고 믿음이라는 단단함

by 블리

뜨겁게 18살을 보냈다면, 19살은 열렬했다.

대한민국에서 고3은 자동적으로 수험생이 되지만, 나는 특성화고 학생이었다.
입시 대신 취업의 기로에 서 있었고, 공무원 준비반과 공기업 취업반 사이에서 이기려 애썼다. 자격증을 따고, 공부하고, 경쟁하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묘하게 허전했다.


하굣길 버스 창문 너머로 스쳐가는 도시의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무얼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을까? 왜 특성화고에 왔지? 내 꿈은 뭐지?’ 취업이 끝이라면, 그다음은?

머릿속은 늘 의문형이었다. 분명히 좋아하는 것도 있었고, 잘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준비하던 것들은 그 어떤 것과도 맞닿아 있지 않았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대학에 가야겠다. 서울로 가야겠다.’ 벼락치기로 봉사시간, 대외활동, 수상경력, 생기부까지 정리했다.

세 장 남짓하던 페이퍼가 어느새 열다섯 장으로 불어났다. 그땐 무모했지만, 그 무모함 덕분에 더 단단해졌다.

입시 막바지 즈음, ‘그래도 현장실습은 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부산 중앙동의 선박회사에서 사무직 인턴으로 일했다.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첫 사회생활은 신선했다. 하루하루 배워가며 적응했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의 리듬을 배웠다. 그때 잠깐, ‘이대로 일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편이 목말랐다.


‘배움’의 갈증이었다.
어디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 문이 열렸다.

그 선택은 처음부터 내 몫이었다. 내가 결정했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내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셨다. 잔소리도, 나무람도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알아서 해. 네 하고 싶은 거 해.”


처음엔 무관심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은 ‘전적인 신뢰’에서 나오는 가장 단단한 응원이라는 걸.
그 믿음이 나를 세상으로 나가게 했다. 그 믿음 덕분에 나는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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