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떠나 서울로 향한 은지에게 수도권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회의·워크숍·문화 활동이 대부분 수도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서울의 ‘인프라’는 막연한 꿈이 아니라 꼭 손에 넣고 싶은 현실 그 자체였다. 그래서 스무 살의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두려움조차 밀어내며 서울행을 선택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서울의 삶은 꿈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10대의 선택이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신뢰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20대의 선택은 ‘독립’이라는 이름의 전장을 통과하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올라온 서울에서 집, 등록금,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마땅한 거처조차 없어 망설이던 그때, 동작구청에서 시범 운영하던 ‘한세대 지붕공감’이라는 공유 주거 사업을 우연히 발견했다. 어르신과 한 집을 쉐어하며 저렴한 월세로 생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운 좋게도 좋은 어르신과 담당 주무관을 만나, 그녀는 뜻밖에 안정된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창을 몇만 번은 열었다 닫았을 것 같은 절박한 시기였지만, 그 노력은 결국 길을 찾아 주었다.
주거가 해결되자 바로 다음 고비는 등록금이었다. 입학금은 인턴 생활로 모아둔 돈으로 간신히 해결했지만, 본 등록금은 막막했다. 그러나 마침 신입생 장학금 시즌이 찾아왔고, 지역구·학교·대외활동에서 지원을 받아 첫 학기의 등록금도 기적처럼 해결되었다. 그렇게 서울 생활은 ‘낭만’이 아니라 ‘돈’과의 끝없는 전쟁으로 시작됐다. 짐을 풀자마자 알바를 찾았고, 수업이 끝나면 일하고, 봉사하고, 멘토링까지 하며 하루하루를 빽빽하게 채워나갔다. 지방 출신이라 느끼는 불편함, 속도 차이, 경제적 부담 속에서도 가까스로 버텼다. 어머니가 간간히 보내주신 생활비 덕에 굶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의 그녀는 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그때의 일상은 즐거웠다. 공부도, 일도, 학교생활도 낯선 도시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동작구에서 한강다리를 건너 강북까지 멘토링을 하러 다녔고, 밤새 공부하며 성적 장학금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싸웠다. 생존을 위해, 내가 선택한 서울에서 버티기 위해 스무 살의 은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과 맞섰다.
서울은 생각했던 낭만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집을 가진다는 건 꿈같은 일이고, 모든 순간이 경쟁이었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해야 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알기에는 너무 이른 진실들이었지만, 동시에 그 경험들은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매일 배우고 성장했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작은 행복들을 발견했다. 결국 20살, 가장 바랐던 바람도 가까스로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은지에게 20대의 시작은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싸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배움, 성장, 그리고 스스로를 증명해낸 시간들이었다. 돌아보면 낭만은 없었지만, 그 어떤 낭만보다 값진 경험들이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스무 살의 그녀가 버텨낸 모든 시간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혼자 살아남은 작은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