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갈증이 나를 대학원으로 이끌었다

by 블리

회사와 학교를 함께 다니던 시절, 마음 한편에서는 늘 ‘더 배우고 싶다’는 갈증이 작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청소년 현장에 바로 뛰어들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결국 나는 대학원을 선택했다.


졸업과 동시에 이어진 새로운 시작은 예상만큼 거창하지 않았다. 다만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조금 더 선명해졌고, 깊이 파고들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학부가 ‘맛을 보는 시간’이었다면, 대학원은 천천히 ‘깊어지는 시간’에 가까웠다.


사회복지와 청소년학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지만, 결국 나의 기반이었던 사회복지를 다시 선택했다. 부산에서의 일상을 내려놓고 서울로 향하는 결정이 맞는지, 잘할 수 있을지 수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명확한 답은 없었지만,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청소년지도사 2급 연수를 마치고 곧바로 올라오던 24살의 나는 피곤함 속에서도 이상할 만큼 설렜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배움, 새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기대가 채 가시기도 전, 코로나가 터졌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며 캠퍼스의 온기는 사라졌고, 화면 속 교수님과 동기들 사이에서 ‘제대로 배우는 걸까?’라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배움의 본질은 결국 환경보다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날도 있었지만, 질문하고, 듣고, 참여하며 조금씩 내 공부를 만들어갔다. 논문이라는 커다란 산도 있었다. 선행연구를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 앞에서 머리를 감싸 쥔 날이 많았다. 미국과 유럽의 논문까지 찾아보며 글자가 유독 작아 보이던 순간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흥미로웠다. 자발적인 선택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지탱해주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주제를 다듬어갈 때마다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묵직한 감정이 차올랐다. 배우는 만큼 질문도 많아졌다. 불편함이 생기면 메모해두고, 생각이 떠오르면 글로 정리했다. 명확한 답보다 질문 자체가 성장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면서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자랐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버텨내야 했던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치열했고, 그만큼 배웠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여전히 배움을 향한 열정이 조금도 식지 않은 채로, 여전히 ‘ing’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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