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현장에서 퇴사를 고민하는 자리에 섰을 때, 마음은 쉽게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서울에 남을 것인가, 부산으로 갈 것인가. 온전히 내가 내려야 하는 선택 앞에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후회하지 말자고. 무엇이든 100퍼센트 만족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함께 받아들이자고.
서울에서 보낸 몇 해는 부산을 떠올리게 했다. 동시에, 내가 왜 서울에 오고 싶었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2022년 12월의 나는 여러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설렘과 불안, 미련과 기대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고민 끝에 부산을 선택했다. 서울에 집이 없었던 나는 천안·아산에서 기차로 통근했다. 정해진 시간에 몸을 싣는 일은 반복될수록 지쳤다. 흐름이 좋을 때도 기차 시간을 이유로 자리를 떠야 했고, 일이 밀려도 시계를 먼저 보게 되었다. 금전적으로도 버는 만큼 쓰게 되니 마음 한편에 불안이 쌓였다. 서울에는 좋은 기억도, 아쉬운 장면도 끝없이 남아 있었지만, 결국 나는 그 기억들을 한켠에 두기로 했다.
부산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서울에서의 짧은 현장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현장의 즐거움과 배움을 가득 채웠던 시간들은 다음 장을 위한 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부산행을 마음에 정하고 이직 자리를 찾았다. 생각보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공백 없이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컸는데, 마침 새로 문을 여는 동래구청소년수련관 청소년사업팀에서 팀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서류 합격 이후에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면접을 보고, 서울의 일을 정리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는 마음의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지만, 퇴사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는 끝내 쉽지 않았다. 팀장님과의 면담 자리에서 결국 말을 꺼냈다. 11개월 기한이 정해진 프로젝트 담당자였지만, 퇴사는 퇴사였다. 말로 전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날, 부산에서 최종 합격 연락이 왔다. 선택에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마음을 단단하게 했다. 도망치는 모양새가 아니라, 다음을 향한 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
한 시간 남짓,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긴 이야기를 나눴다. 첫 사회생활을 동청문에서 시작해 멋진 팀장님 곁에서 일할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고집 있던 팀원의 신념을 지켜주려 애써주신 것, 사업을 풀어내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신 것, 어려울 때는 꼭 물어보라는 조언까지. 응원과 지지는 아낌이 없었다.
이후 관장님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에 대한 감사, 새로운 현장에서의 기대와 응원,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담담히 들려주셨다. 퇴사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모두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신 마음 앞에서 눈물이 났다. 어쩌면 그날이,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준비해준 마음과 준비해온 마음을 전하며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사람이 떠나고, 사람이 오는 일에는 언제나 이별이 있다. 이별에 익숙해진다는 건 어쩐지 슬픈 일이다. 그래서 나도 이별을 준비했지만, 여전히 슬펐고 시원섭섭했다. 그럼에도 이별을 예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퇴사는 ‘좋은 것들이 가득 담긴 포장된 선물’로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서 첫 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