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은 늘 가장 오래 남는다

by 블리

2023년 3월 21일,
내 생애 첫 한라산 등반에 성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작은 꽤 즉흥적이었다.
약 3년 전, 혼자 2박 3일 제주여행을 계획했다. 부산으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없이 지내던 시기였다. 변화가 필요했던 걸까, 어느 날 느닷없이 비행기표를 끊었다. 일정은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월요일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해, 다음 날 새벽부터 한라산을 오를 계획이었다.


21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한라산 통제 여부였다.
갈 수 있을까,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확인했는데 다행히 정상까지 개방된 날이었다. 그 순간, 이미 반은 오른 기분이었다. 그동안 체력관리를 해온 덕분인지 생각보다 오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사진도 많이 남기고 싶었지만, 산은 온통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기대했던 풍경은 담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아쉽지 않았다. 첫 혼자 여행, 첫 한라산이라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여행은 분명 성공이었다.


여행의 목표는 오직 한라산이었다.
21일 하루를 온전히 산에 쏟아붓고 내려와 연탄불에 고기를 구워 먹은 뒤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부산에 돌아와 오후 근무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꽤 강행군이었지만, 그만큼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큰 배낭 하나를 메고 혼자 비행기를 타는 일은, 그때의 나에게 꽤 큰 용기였다.
혼자 여행하는 일을 막연히 두려워했는데, 막상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고, 한라산 동행을 구해 함께 저녁을 먹는 경험들. 그런 순간들을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 싶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인연이었고,
한라산이라는 국내에서 가장 큰 산에 도전한 것도 분명한 모험이었다. 무엇보다 삶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시기에, 이 여행은 정확한 타이밍에 다녀온 선택이었다.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거나 나태해질 때 산을 찾게 된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산을 오르는 동안만큼은 생각이 사라진다. 정상에 빨리 도달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너무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성의 끈을 잠시 놓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한라산을 가야지, 가야지 마음먹을 때마다 통제가 걸려 쉽게 오를 수 없는 산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첫 산행이 한라산이었다는 사실이 행운처럼 느껴진다.

내 생애 첫 산이, 가장 높고 단단한 산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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