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나는 그런 거 따지는 사람 아니에요.”
출신 학교나 집안, 연봉이나 직장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결국 사람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지만 낯선 이와 처음 마주할 때,
그들이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건 바로 그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던 것들이다.
사는 동네가 어디쯤인지, 차는 어떤 브랜드인지, 직업은 얼마나 번듯한지.
묻지 않지만, 흘리듯 말한다. 웃으며, 가볍게, 자연스러운 대화인 척.
“요즘 그 동네 집값 많이 올랐죠?” “그 회사 연봉 꽤 되지 않아요?”
대화는 무심한 흐름을 가장하지만, 그 말들 속에는 조용한 계산이 숨어 있다.
마음보다 먼저 작동하는 셈법.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서 무게를 가늠하는 중이다.
가치 있어 보이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가치 없어 보이면 ‘좋은 사람’인 척만 남는다.
공손함은 유지되지만, 관심은 빠져나간다.
다정한 말들 아래 감정은 없다.
나는 한때 이를 위선이라 여겼고, 속물적이라 단정했다.
그런데
나도 사람을 분류하고 있었고,
관계를 효율로 재고 있었고,
마음보다 먼저 이득을 계산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말했었다.
“나는 그런 거 안 따져.”
부끄러웠다. 고상한 척 하면서, 사실은 나 역시 같은 규칙 속에 있었다.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힘을 주고, 시선을 조정하고, 어조를 다듬었다.
나는 위선이라 여겼던 모든 것들을 내 안에 품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면서, 부모는 급을 나눈다.
“모두 소중한 친구야”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그 친구의 말투, 배경, 사는 동네, 부모 직업을 기준으로 서열을 정리한다.
아이는 모른다.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에 등급표가 숨어 있다는 걸.
그러다 어느 날, 이렇게 말하는 부모의 얼굴을 본다.
“음... 이 친구랑은 너무 친하게 지내진 말고”
그렇게 아이는 친구를 사귀는 법보다, 사람을 구분하는 법부터 배운다.
좋아하는 마음보다, 괜찮은 급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걸.
사람은 평등하다고 말하면서도, 관계는 분류된다.
차별을 가르치진 않지만, 눈빛과 말끝으로 질서를 심어준다.
아이는 자란다. 그러면서 또 말한다.
“나는 그런 거 따지는 사람 아니에요.”
아이들은 부모가 말한 대로 크지 않는다.
부모가 보여준 대로 자란다.
우리는
계산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계산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렇게, 세대를 거쳐
감정은 조용히 무너진다.
감정은 무너질 때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음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