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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Mar 17. 2023

우리의 꿈

From 1pagestory 단편

 태형은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만화를 즐겨봐 오면서 그에게는 만화가라는 작지만 거대한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현재 고작 회사의 마케팅으로 일하며 매달 월급을 타가는 평범한 월급쟁이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 태형의 부모는 그가 책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동화부터 읽어주기 시작해 어느 날 태형이 만화책을 잘 보는 것을 보고 그 이후로 만화책도 권장해 태형은 어린 시절 다른 또래들과 달리 만화를 쉽게 접했고 몰래몰래 훔쳐보던 아이들과 다르게 그는 건전하게 만화라는 문화로 헤엄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대학을 졸업할 시점에 부족한 그림 실력을 보완하고자 그는 부모님께 미술 학원에 다니게 해달라고 했다. 처음에 의아해하시던 부모님은 이유를 물었고 만화 실력을 향상시켜 작가가 되겠다는 말에 극구 반대했다. 만화가는 굶어 죽기 딱 좋은 히트작을 내지 않는 한은 밑바닥을 기게 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태형은 화를 내며 자신은 만화가가 될 거라고 소리쳤지만 부모님의 등쌀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회사에 입사해 월급쟁이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들어간 회사는 복지가 좋았지만 그 일은 그에게 맞지 않았고 그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만화에 대한 꿈이 있었다. 여러 능력을 갖게 해 주어 초인을 만드는 열매, 영혼들에게 안식을 주는 사신, 죽음에 관여할 수 있는 노트, 이것저것이 다 나오는 주머니 등 그에게는 그곳이 현실이었고 미래였기에 그는 끝까지 그 꿈을 놓지 못했다.


‘나도 그림그림 열매를 먹었더라면’

‘나도 도라에몽 주머니가 있었더라면’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그에게는 여전히 현실이 괴로웠고 만화 속 세계가 더 아름답고 편안한 세계였던 것이다.

 출근을 한 어느 날 그는 실수를 저질러 자신의 상사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 있었다.


 “야 이따구로 해서 누가 이 상품에 관심을 갖겠냐? 어? 생각을 좀 해봐라. 맨날 만화만 쳐보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사람 사는 걸 봐. 대체 누가 전자기기를 산다고 막대한 부를 창출해 낼 거라고 생각을 하냐? 이게 뭐 드래곤볼이라도 되냐? 아휴 답답해라”

 “죄송합니다. 다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에 또 전대리야?”

 “뭐 맨날 이상한 상상을 펼쳐서 일을 만드네”

 “몰라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하하하하”


 남들이 자신을 비웃는 소리에 얼굴이 타기 시작한 태형은 상사에게 책상 모서리처럼 허리 숙여 사죄를 하곤 다시 본인의 의자에 앉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쳐다본 책상 위에는 자신이 빌려온 만화책과 컴퓨터 모니터 옆에 놓여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인 고무 인간의 피규어가 현재 태형의 얼굴처럼 붉은 증기를 내뿜으며 맞이해 줄 뿐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태형은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회사 근처 책방에 들렀다. 요즘 따로 만화책을 빌려 볼 곳이 거의 없지만 운이 좋게도 이 회사 근처에는 옛날 책방 한 곳이 남아있어 최신 만화책을 빌려 볼 수 있었고 오늘은 빌려온 책을 반납할 겸 새로이 빌리러 방문한 것이다.


 “어 왔구먼 자네. 요즘 자네 같이 꾸준히 책 빌리러 오는 사람도 드물어 아차 그래 그 저번에 보던 거 신간 나왔어 그거 일부로 한 권은 내가 몰래 챙겨놨지”


 태형을 본 주인아저씨는 반갑게 인사하고는 카운터에서 만화책 한 권을 꺼내 태형에게 건네주었다. 태형은 감사 인사를 올리고는 한 바퀴 쑥 둘러보고는 볼만한 책 몇 권을 집어 들고는 카운터로 가자 주인아저씨가 가라는 손동작을 했다.


 “뭘 우리 단골인데 총 6권이니까 2박 3일인데 자넨 그냥 천천히 갖다 줘도 된다네 일주일만 넘기지 말고”


 태형은 든든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에게는 이 만화책 여러 권이 그저 행복이었다. 집에 들어온 그는 곧장 자신의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그나마 나이를 먹고 바뀐 것이 누워서 보던 습관이 책상에 앉아 보는 것이다. 역시나 펼쳐든 만화는 너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리 6권을 전부 다 읽은 그는 잠시 다음 스토리에 대한 행복한 상상을 펼치다가 이내 펜을 집어 들고 노트를 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섭게 생긴 괴물, 수트를 착용한 히어로, 순수하게 생긴 금발의 미소녀가 순식간에 그의 손에서 탄생하였고 낡고 군데군데 해진 부분이 있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에는 그의 애환, 행복, 고통 그리고 삶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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