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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Nov 01. 2023

시월의 약속

From. 1pagestroy(한단설) By Flaneur

 이른 아침 A는 지방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학생인 형편상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아 빨리 가고 싶었지만 저렴한 무궁화호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B는 대학교 커플이었다. 22년 인생 평생 첫 연인인 B가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B가 본가로 내려간 어느 날 A는 문득 직감을 했다 그녀의 마음이 식었다고.


 밤새도록 미친 듯이 갈등하고 어떻게 해야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하염없이 고민하던 그는 결국 다음날 바로 그녀의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연락했고 눈 뜨자마자 준비를 마친 뒤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평소라면 조용히 덜컹거리는 기분을 만끽하며 기차를 탔을 그였지만 그날 그는 먼 지방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르고 오직 그녀를 잡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기차역에 내리자 B가 마중 나와 있었고 둘은 함께 한 카페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역 앞의 카페라 그런지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다.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가 오갈 것 같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듣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어딜 앉아도 근처엔 사람이 있었고 최대한 피하고자 택한 곳은 카페의 가장 구석진 자리였다.


 둘은 말이 없었다. 서로 지금 대치하는 이 상황이 무얼 의미하는지 아마 둘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A가 먼저 입을 뗐다.


 "잘 지냈어?"

 "응 오빠는?"


 순간 A는 목이 막혔다.


 이미 다른 친구를 통해 들은 이야기로 알고 있는 사실로 B가 A에게 실망해 관계를 이제는 힘들어한다는 것. 이 사실이 그의 예감이 맞다고 증명한 것 같아 목이 메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나는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아"

 "아니 뭘 해도 안될 것 같아. 그냥 더 이상 오빠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 순간 그는 지금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녀를 붙잡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가 사랑한 여자인 만큼 여기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커피잔을 들고 더 이상 있지도 않은 음료를 들어 빨대를 무수히 빨아 당겼지만 기껏해야 함께 담겨 녹기 시작한 얼음물 몇 방울 만이 그의 입속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헤어진 연인은 어떤가 그들은 보통 그날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슬플 뿐이다 누구도 기쁜 마음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A는 웃는 모습으로 B를 보내고 싶었다. 그가 사랑한 여자가 자신으로 인해 슬퍼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A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시작했다. 사실 지난주에 자기가 친구들하고 술을 마셨는데 누가 어떻게 했다느니 서로가 공감하고 웃을만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꾸고자 노력했다. 그러자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B도 가벼운 웃음을 지었고 A는 그런 상황에 나름 만족해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점차 해가 자취를 감추려 하자 A는 슬슬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일어나서 헤어진다면 아마 앞으론 다시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속에 있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음 그래 있잖아 내가 약속 두 개 할게. 우선 지금 네가 내게 실망한 만큼 나중에 꼭 너에게 걸맞은 남자가 되어서 다시 한번 데리러 올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흠 그래 지금 우린 이렇게 끝이 나지만 나는 그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로 너의 편이 될게. 이것만은 잊지 말아 줘"


 그렇게 둘은 서로 가벼운 웃음을 주고받으며 10월의 마지막날 그들 역시도 마지막을 함께 맞이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A는 노래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꽂았다. 그의 기분을 알아주었는지 음악 프로그램은 알아서 이별곡을 틀어주었고 그는 슬픔에 젖어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을 숨기고자 밝은 달만 바라보았다.


 10년 뒤 시월의 마지막 날. 그는 다시금 그 지방의 기차역을 찾았다. 당시 힘겹고 슬펐던 기분은 더 이상 없었고 A는 다시 그곳을 둘러보고는 홀로 말했다.


 "첫 번째 약속은 못 지킬 것 같아서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더라고. 그래도 마지막 약속만큼은 꼭 지킬게. 알잖아? 나 약속만큼은 잘 지키는 거"


 그는 다시금 시월의 약속을 다짐하며 웃었다.


 From. 1pagestory(한단설) by Flan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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