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이야기 4
사람은 비어있는 채로 태어난다.
시간이 흐르며 자아가 생기고 삶을 살아가며 채운다는 개념을 배운다. 전화번호부를 채우고, 진열장에 상장을 채우고, 빈 종이 위에 경력을 채운다. 하루에 주어진 24시간을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채운다.
채우는 것은 채울 공간이 필요하다. 그릇이 있어야 물을 채울 수 있다. 채우는데 급급하면, 그릇을 보지 못한다. 하나씩 채우다 보면 그릇의 크기의 한계 때문에 더 채우지 못할 때가 온다. 그렇게 비어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채로 삶을 살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이 무엇일까. 그것은 우주이다. 우주는 텅 비어있다. 밤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들이 우주를 꽉 채운 것 같다. 하지만 우주 입장에서 보면 별들이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다. 너무나 크기 때문에 채움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주는 자신의 그릇을 팽창시킨다. 더 많은 별들이 생겨나도 우주가 커지는 속도가 더 빠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주는 더 비워진다.
사람의 마음은 큰 것인가 작은 것인가. 사람의 그릇은 커지는가 작아지는가. 비워지는 사람은 사실 비우지 않는다. 그릇을 키운다. 오늘보다 내일 나의 그릇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나는 점점 비워진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받은 사랑, 친구들과의 우정, 잘해보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저 나라는 공간이 더 팽창할 뿐이다.
따라서 비워지는 사람은 비우는 행위를 하지 않고 비움을 당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것에 열려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고, 살지 못했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경험을 하면 할수록 비워지며,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여유로워진다. 준다는 생각이 없이 주며, 받는다는 생각이 없이 받는다. 비워지는 사람에게서 뺏을 수 있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