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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ug 10. 2021

고작 책 한 권 낸 작가

대놓고 악플을 다는 서점 사장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정체성이 가끔 혼란스럽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저 아이 엄마, 아내, 전업맘이 나의 역할의 모든 것이었다. 수입 없이 그저 아이 키우는 엄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책을 쓰기 시작했고 그 책이 출간되면서 '작가'라는 호칭이 붙었다. 여전히 나의 현실은 그저 애엄마인데, 온라인상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불완전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이따금씩 든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작가로 불렸다. 대표님이 보내신 출간 계약서 우편물에 떡하니 수신인으로 '우혜진 작가'라고 쓰여있었다. 당연한 건데 왜 그리 이상하고 어색하고 그 글자를 지우고 싶던지. 기분이 좋기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얼른 우편물을 뜯어 필요한 서류만 빼내고 우편봉투를 버렸다. 


책을 내겠다고 원고를 쓰고 있으니 예비작가 맞다. 출판사와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약까지 했으면 작가 맞다. 결국 책을 냈으니 작가, 그것도 맞는 말이다. 누구나 아는 말이고 당연히 그렇게 불린다. 그런데 나는 책이 나오고 저자 증정본이 집에 도착한 그날도 내 이름이 적혀있고 내 사진이 담긴 그 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쓰고 지웠고, 궁리했고 생각했던 나인데 말이다. 좀 칭찬을 해줬어도 되었지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는 다른 이들이 나에게 작가라고 불러줄 때마다 뒷걸음질 치는 듯한 감정이 들었고, 나 스스로 작가라고 이야기하는 건 몇 주가 걸렸다. 당당해지고 싶었지만, 그럴싸한 사람이 아닌 내가 책 하나 냈다고 그런 호칭을 듣는 게 버거웠다.







"책 하나 내놓고 무슨 북 토크를 한다고..."


매일 3시간 가까이 글쓰기를 9개월. 출판사 계약을 하고 글의 방향을 수정하느라 원고 반이상을 다시 썼다. 그리고 퇴고까지... 글을 지겹도록 쓰고 읽었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책도 무수히 읽었다. 원고를 쓰기 시작할 무렵 코로나가 시작하던 터라 3살, 5살 두 아이는 어린이집에도 가지 않고 가정보육 중이었다. 두 아이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케어하고 아이들이 잠들면 부지런히 글을 썼다. 그런 시간을 보낸 나인데 내가 당당하지 못할 게 뭐람. 책이 나오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명작가가 책이 나왔다고 누가 알기나 할까. 애나 키우던 엄마가 책 하나 썼다고 이 책을 누가 읽을까. 이 글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기나 할까. 브랜딩이고 홍보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이 책을 어쩌지.

그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작가라고 불릴 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그리고 그 누구라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두 감정이 하루에도 100번쯤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쨌든 책이 나왔으니 이 아이를 알려야 한다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돌아보지 않고 주춤하지 않고 그 길만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목적도 목표도 없지만 그저 시작했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그렇게 작가라는 이름에 가까워지려고 여기저기 들이대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작은 서점에 찾아가서 슬쩍 말도 걸어보고, 모르는 유튜버에게 메일도 보내고, 인스타 DM도 보내면서 난생처음 얼굴 두꺼운 사람이 되어갔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니.. 분명 승낙보다 거절이 많았음에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성장해갔다.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내려 했고 상처를 빨리 털어내려 애썼다. 그 시도와 움직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속도를 철저히 마음으로 겪으면서 말이다. 


그날 방문했던 작은 서점에는 남자 사장님이 혼자 계셨다. 손님이 한 분도 안 계셔서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고, 언제 사장님께 말을 걸어볼까...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저, 사장님. 여기 작가님들을 모시고 강연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북토크 같은 걸 진행했었는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아.. 저기. 제가 얼마 전에 책을 냈는데요~주제도 서점과 어울리는 책이어서요, 기회가 되면 저도 한 번.."

"책을 내셨어요? 책 몇 권 내셨어요?"

"한 권 이요. 첫 책이에요"

"아.. 한 권 냈는데 무슨 북토크를..."



사장님의 눈을 쳐다볼 수도 그 서점을 뛰쳐나올 수도 없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사실 그런 말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니었다. 꼴랑 책 하나 내놓고 작가랍시고 휘젓고 다니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시작부터 나는 많이 조심스러웠고, 시간이 걸렸었다. 나의 의도는 그게 아니고 정말 크나큰 용기를 내서 건넨 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건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 

그때는 그저 그 말이 부끄러워 수긍하는 듯 얼버무리며 서점을 나왔다.



두고두고 그 말이 그 장면이 나에게 각인되어있다. 1년이 다되어가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나에게 평생 동안 잊히지 않을 차가운 기온이다. 나라는 사람과 내가 쓴 책 그리고 9개월의 시간을 한꺼번에 '아무것도 아닌 그 무언가'로 만들어버린 악플 같은 거라고 할까? 악플을 아직 받아보지 못했지만 대놓고 그 사장님은 나에게 악플을 다셨다. 그냥 요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작가님들을 모시기 어렵다고 했으면 좋게 끝날 상황을, 굳이 콕하고 난데없는 곳을 찔러야 속이 시원했을까. 





우리는 무언가를 비판하기 전에 무언가를 먼저 존중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난하고 공격하기 전에 우선 그 책을 번역한 번역가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책을 번역했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곱씹어보며 해석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 끝까지 쓰는 용기, 정여울-





서점을 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자세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몇 권을 냈는지 그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이나 글에 대한 마음. 그것부터 존중해줬어야 했다. 한 권이라고 첫 책이라고 내가 대충 썼을까. 첫 책이라 그 책에 떳떳하려 더 많이 애쓰며 자학하며 완성한다. 아마도 시작하는 작가들은 다 그럴 것이다.  고작 그런 평가를 하다니.



10권쯤 쓰면 그 사장님이 나의 책 강연을 열어주실까?

속없는 나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여기저기 들이대면서 생긴 상처들이 오늘도 나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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