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에는 많은 걸 이루고 있을 줄 알았다
“몇 살이에요”
“몇 년생이세요?”
흔히 우리가 나이를 묻는 질문은 이렇게 나뉜다. 나이와 출생연도. 어릴 때는 나이를 물어보게 되고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나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출생연도를 묻게 되는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제 나에게도 출생연도를 물어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내가 봐도 남이 봐도 나이가 있는.
매해 나이를 기억하고 살지 않는다. 새해가 되면 올해 년도와 출생 년도 빼기를 한참이고 계산을 해야..그제야 내 나이를 인지한다. 1년에 새해와 연말 두 번, 내 나이를 의무적으로 계산해본다. 연례행사처럼.
사실 아이를 낳고나서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고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만큼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39살.
그것도 친구들은 마흔, 나는 39.
1월생인 나는 나이 앞에 ‘빠른’이라는 접속사가 하나 붙어있다. 학생시절에는 학년으로 신분을 나타내기에 다 같은 나이처럼 살아왔는데, 사회에 나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몇 년생이냐고 물으며 같은 학년을 지낸 사람임에도 그저 나는 동생으로 나열되었고, ‘빠른’이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하나 난감하기도 했다. 한 학년 밑의 동생처럼 지낸 나이와 친구를 하기에는 또 싫었던 것이다. ‘빠른’을 가진 한 사람이 때문에 나이의 족보가 꼬이는 경험, 많이들 하게 된다. 어려지는 게 싫어서 ‘빠른’을 빼고 얘기하던 시절도 꽤 길었다. ‘빠른’을 강조하면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려고 노력하는 늙은 나이라던데...내가 이제 그러고 있다.
어릴 적에 상상해본 어렴풋한 40의 나이는 많은 것을 이루고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길이 보이지않는 취직이 해결되고 돈벌이도 안정되어 있을테고,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을 것이고 또 방황과 불안정보다 안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나이. 얼른 나이가 들어서 40이 되고싶지는 않았지만, 대학시절의 흔들림이 힘에 부치고 지쳐서 시간이 어떻게든 빨리 흘러라..원했던 적도 있었다. 40에는 많은 것을 이루고 있을 줄 알았기 때문에.
나이 40, 다른 말로 불혹이라고 한다. 출생년도만 본다면 나는 올해 39살이다. 불혹의 코 앞. ‘불혹’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말인데, 예전의 40세는 그랬던걸까. 평균 수명이 50세 시대에는 그랬을수도 있겠다. 지금처럼 100세 인생에서의 40세와는 나이의 위치도 지혜도 다를테니까.
나부터 보더라도 지금의 40은 여전히 수없이 흔들린다. 이제는 하나의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한 사람이 몇 개의 직업을 거치는 삶을 사는 세상이다. 제2의 직업을 더 늦기 전에 준비해야하는 때이고, N잡러로 미래를 대비하는 연습을 시작해야하는 나이이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고, 이뤄둔 것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며 셀 수 없이 불안하고 또 불안하다. 내실이 가득차 있는 듯 하지만 구멍이 여기저기 숭숭, 바람이 솔솔 불어대는 나이 40.
“여보야 벌써 40이야?”
“아니야, 나 빠른이거든. 83년생이라 39이야. 내 친구들이 40이지”
남편은 언제쩍 ‘빠른’을 꺼내냐 싶어서 기가차서 웃고, 나는 ‘빠른’ 두 글자를 내세우며 당당히 39을 주장하는 내 말이 웃겨서 웃고. 내 친구들이 들으면 선긋기 바쁜 나를 보며 쟤도 참 너무한다 싶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