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 보고타 (Bogota)
2015년 12월 31일
저녁 먹고 호스텔에 돌아왔다. 우리도 밤 10시 (보고타에서는 무지 위험한 꽤 늦은 시간) 까지 돌아다니다 왔는데 영국 사람들 4명이 방금 7번 길에서 칼빵 맞을 뻔했단다. 그중 한 명은 가진 돈, 여권, 지갑 다 털렸다. 이게 웬 새해 선물이람.. 경찰들 계속 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말하는데 안경을 썼고 흰색 티셔츠에 빨간 스트라잎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이거 완전 내 패션이랑 똑같아서 흠칫 놀랐다. 아무튼. 보고타 밤거리가 정말 무섭다고는 들었는데 같은 호스텔 사람들이 당했다고 하니 가슴이 내려앉는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새해 축하! 나도 스물다섯이 되었다. 시간이 무섭도록 빠르다. 사이타 호스텔 새해 축하 파티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다.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남미 여행 중인 일본 사람 타로는 춤추기를 좋아하고 흥이 넘친다. 사교성도 좋다.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손수 만든 일본 빵을 팔고 다닌다. 이런 거는 본받을 만하다.
멕시코 청년 살바도르. 새해 인사차 부모님께 영상 통화를 걸어서 호스텔 사람들에게 다 보여주었다. 타로를 보더니 부모님께서 "꼬레아노?" (한국인이니?) 하신다. 하하. 왠지 모를 이 뿌듯함. 남미 여행하면서 치노(중국인), 하포네스(일본인)보다 꼬레아노가 먼저 나온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콜롬비아 친구 후안은 훤칠하니 잘생겼다. 새벽 3시쯤엔가? 내가 잠드니까 마구 깨우며 "새해를 잠으로 보내면 어떡해 이 사람아. 빨리 일어나!" 라며 술잔을 더 따라주었다. 하하.. 다음날 아침, 카메라가 든 내 보조가방을 베고 로비 소파에서 편하게 잠든 후안을 보았다. 깨우기 미안해서 그냥 놔두었다. 호스텔 주인 존은 살사 댄스를 추자며 여자들을 부추겼다. 다들 수줍어서인지 자리에 앉아있자, 멋쩍어하는 존. 잠시 뒤 존과 후안이 한국 여자분 두 명의 손을 잡고 살사를 추었다. 옆에서 살바도르의 표정을 지켜보는데 재밌다.
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외국인들에게 너무 어려운 인사말이다. 외국 친구 누구도 제대로 따라 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2016년은 평생 잊지 못할 새해맞이가 된 것 같다. 조촐하지만 너무 행복하게 다가온 2016년. 올 한 해가 늘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그날 일기에 쓰여 있다.)
2016년 1월 1일
새벽 세시 넘어서까지 술파티를 벌인 사이타 사람들. 아침 일찍 일어난 부지런쟁이들이 몇몇 있었다. 같은 호스텔의 에반과 사라는 보고타의 이곳저곳을 서칭 해본다. 나도 보고타에 대해 딱히 뭘 찾아보고 온 건 아니었기에 또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시몬 볼리바르 공원!
보고타의 날씨는 완연한 봄이다. 봄바람, 산과 호수, 하늘, 공원 입구에서 풍겨오는 길거리 음식 냄새, 모든 것이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공놀이 하는 아이의 공이 내 앞까지 굴러오자 웃으며 다시 던져주고 (나쁜 아이. 고맙단 말 한마디를 안 하네.) 나무 밑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들이 있고 (떨어지는 사과나 맞아라.) 휴일을 맞아 피크닉을 나와 맛있는 도시락을 먹는 가족들 (아 배고파 죽겠다. 에반이랑 사라는 배도 안 고픈지 잔디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다.) 호수 위에 보트를 타고 노 젓는 사람들 (날도 더운데 고생이 많겠다.) 모든 풍경이 하나같이 낭만적이다. (라고 쓰고 '나는 할 일 없는 여행자예요'라고 읽는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땐 공원에 뭐하러 가나 이해가 안 되었다. 돈 겨우 긁어모아 남미까지 왔는데 한국에도 널려있는 공원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낸다고? 말도 안 돼. 사실 시몬 볼리바르 공원이야말로 어디에나 있는 흔한 유원지다. 그런데 어느덧 현지 사람들의 풍경에 동화되어 여유로운 하루를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해서 인 것 같다.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유명한 곳만 골라서 방문하려고 했던 내 태도가 서양 여행자 두 명으로 인해 변했다. 여유롭게, 머물고 싶은 곳은 더 머물며 충분히 보고 즐기고 떠나는 여행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이타 호스텔을 나왔다. 봄의 도시 메데진으로 떠나기 위해서. 호스텔을 나오는 게 왜 이렇게 귀찮았는지 모르겠다.
배가 너무 고파서 길거리에 아무 곳에나 들어가 대충 엠빠나다와 빵을 시켰다. 4500페소를 치르고 500페소의 잔돈이 남아 길가의 걸인 아이에게 주었다. 근데 내 빵이 탐났는지, 계속 따라오며 뭐라 뭐라 말을 한다. 솔직히 무서웠다. 보고타의 밤거리는 위험하다던데 해는 계속 저물고 있었다. 빠르게 도망가고 있는데 지도를 가게에 놓고 왔음을 깨달았다. 보고타 터미널까지 가는 정보가 들어있는 중요한 지도였다. 가방을 뒤지는 나를 보더니 이 아이는 "지도 찾으세요?"라고 묻더니 재빠르게 달려가서 가게에 있던 내 지도를 도로 가져다주었다. "고마워!"를 말하며 또다시 달려가려는데 이 소년, 계속 따라온다. 내 손에 있는 빵을 가리키며 뗑고 암브레(배고파요), 꼬미다(음식) 같은 말을 계속한다. 사실 저 정도 스페인어는 이해하는데 나는 못 알아듣는 척하며 쏘리쏘리만 연발했다. 그러자 소년은 이내 포기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깟 빵 한 조각이 뭐라고 안 줬을까? 어쩌면 예수님께서 걸인의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겨우 500페소(200원) 주었다고 굶주린 사람, 그것도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아이를 무서워하며 매몰차게 도망가 버렸다. 나의 못돼 먹은 이기심에 마음이 아파왔다.
보고타 구 시가지의 꼭대기에 위치한 사이타 호스텔. 사진 속 노란색 건물의 가운데에 있는 에메랄드 빛 문, 그 초인종을 누르면 동네 아저씨 같은 정겨움을 풍기는 존이 문을 열어준다. 때로는 전형적인 콜롬비아 미녀의 상을 가진 존의 조카 다니엘라가 환하게 웃으며 여행자들을 반겨준다.
호스텔을 떠날 때 느낀 극도의 귀찮음. 생각해보니 그건 귀찮은 게 아니었다. 정이 들어서 떠나기 싫은 거였다. 친절하고 정 많은 호스텔 주인, 새해 첫날을 함께 보낸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 남미 여행 중에 유독 반가운 한국 사람들, 2일을 동행한 사라와 에반. 이 모든 조건을 여행지에서 만나기 쉽지 않으니 말이다. 사실 다른 국가의 수도와 비교했을 때 보고타는 관광지로서 매력이 크지 않다. 하지만 나의 보고타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으니까.
귀차니즘 때문에 호스텔에서 거의 1시간가량 고민했다. 떠날 까 말까. 그러고는 길을 나섰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깨달았다. 아! 그 짧은 시간에 사이타의 모든 것과 정들었구나. 다음번에 사이타처럼 머물고 싶은 곳이 생긴다면 거기서는 꼭 1주일 이상 있어야지 라고 다짐하는데 괜스레 눈물이 나는 건 멈출 수가 없었다. 며칠을 굶었을지 모르는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서인지, 웃으며 작별인사했던 사이타 사람들이 생각나서 인지 모르겠다.
칸쿤에서 엔리케 형하고 헤어질 때도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은데. 여행이 너무 좋기는 하지만, 이별의 슬픔에는 언제쯤 무디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