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 멕시코시티 (Mexico city)
2015년 12월 13일
Mundo 호스텔은 조식이 맛있다. 어제 만난 지훈이형과 캐나다에서 온 잭 아저씨랑 같이 밥을 먹었다. 이 아저씨 보기보다 연세가 있으시다. 70세! 원래 캐나다에서 특수 교육을 가르치던 교사였는데 은퇴 후에 세계 배낭여행을 하고 계신다. 인도에도 5달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지훈이형이 듣더니 "Ideal life네요."라고 말했다. 잭 아저씨는 "인생이 완벽할 순 없지. 나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세계일주를 다니고 있지만 그건 결혼을 하지 않아서 처자식이 없으니까 가능한 거고.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생이야. 결국 모든 것이 자기 선택에 달린 거지."라고 하셨다.
호스텔을 체크아웃한 후, 어젯밤에 호스텔에서 만나 동행하기로 한 중국인 친구 Jinwo(편의상 진우)와 함께 이동했다. 오늘은 그야말로 무계획이다. 둘 다 사전 정보 없이 "어디가 괜찮지?"
"소우마야라는 박물관이 좋다던데, 가볼래?"
"그래, 콜!"
"근데 어떻게 가지?"
"-- 역 내려서 걸어가면 된대."
"오케이. 가자!"
이렇게 소우마야를 가게 되었다. 역에 내려서 금방 있다던 소우마야는 10분을 걸어도 없었다. 고생 좀 했다. 길을 모르니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봐야 했다. "Donde esta el museo de.. sou.. maya.." (소우마야 박물관이 어딨죠?) 뭐 이런 돼도 않는 스페인어를 써가며 물어본다. 물어보는 것 까진 어찌하겠는데 대답을 못 알아듣겠다. 그저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하염없이 걷는 수밖에.
소우마야 내부는 멋진 작품들이 한가득 전시되어 있다. 충분한 감상을 위해선 3-4시간은 잡아야 할 듯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중국 황실 캐릭터들로 만든 체스판이었다.
진우와 이야기하다 보니 둘 다 일본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일본어, 영어, 약간의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즐겁게 대화했다. 분명 영어로 물었는데 답은 일본어로 오기도 했다. 이 친구, 나랑 상당히 잘 맞다. 언어 수준도 여행 스타일도 비슷하다. 빡빡한 일정일 좇기보다는 쉬고 싶으면 쉬고, 걷고 싶으면 걷고, 먹고 싶으면 먹는 여행을 즐긴다. 중국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중국은 송나라 이후로 순수 중국 혈통이 정권을 잡은 적이 없단다. 우리에게 친숙한 명나라 조차도 순수 중국이 아니었다고 한다. 진우는 한족 + 몽고족의 피가 합쳐져 있다. 어쩐지, 한국인하고 외모가 비슷하다 했는데.
쏘우마야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인 인류학 박물관이 있는 챠풀테펙(짜뿔떼뻭?)에 가려고 산호아킨 메트로 역을 마구 찾아 돌아다녔다. 도로를 넘기도 하고, 다리도 건너고, 걷고 또 걸어 결코 나올 것 같지 않던 역이 나왔다. 발견하자마자 함께 탄성을 질렀다. 차풀테벡 역에서 나오면 맛있는 집들이 많은데, 그중에 'Pollo Roy'라는 닭고기 집에서 닭 1마리와 탄산 2개를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인당 47페소 (3300원) 정도 나왔는데, 가격 대비 최고의 맛이었다.
배를 채우고, 인류학 박물관 가는 길. 고대 문명에 관심이 많은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박물관을 보고 싶어서 최단거리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때 진우가 하는 말이 "그냥 공원길 따라서 걸어보자. 걷다 보면 다른 재밌는 것도 있을 거고 박물관도 나올 거야." (걷다 보니까 진짜 나왔다.) 한적한 일요일 오후, 공터에 멕시코시티 주민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광대 분장을 한 엔터테이너와 피에로 분장을 한 꼬마(조수)가 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껴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데, 워낙 동양인을 찾아보기 힘든 멕시코인지라 우리 둘이 확 눈에 띄었나 보다. 이 사람이 갑자기 나를 보더니
"Ni hao!" 하길래
"soy Coreano!" (저 한국인이에요.)라고 했다. 그러자,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그건 중요치 않으니 일단 무대 중앙으로 와보라고 손짓한다. 엉겁결에 나는 댄스 배틀의 패널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름을 묻자 'Won'이라고 하니 'Juan(후안)'이라고 막 우긴다. 그 뒤로도 나는 계속 후안으로 불리었고, 삥 둘러선 멕시코 사람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나는 춤과는 담을 쌓고 지낸 사람이다. 고등학교 2학년 체육시간 때 팀별로 안무를 짜서 추는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우리 조는 당시 유행하던 '팝핀 댄스'를 했다. 모두 선글라스를 꼈다. 상상해보자. 초록색 상하의 체육복, 까맣고 동그란 선글라스, 그리고 팝핀 댄스. 남들이 10분에 배우는 동작을 나는 1시간 해야 될까 말까인데 그 어려운 팝핀을 했으니. 바로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런 내가, 라틴의 한복판에서 섹시댄스를 추었다. 어쩔 줄 몰라서 막춤, 살사, 강남스타일을 섞은 요상한 춤을 추었는데 다행히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섹시댄스를 추신 빨간 내복 할머니 (엄청 부담스러웠어요!). 춤추는데 걸리적 거린다고 앞으로 메고 있던 가방을 달라기에 넘겨주었더니 "Adios~~ (빠이~~)"를 외치며 가방을 들고 튀어서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던 그 꼬맹이 삐에로. (퍼포먼스의 일부였다.) 이 모든 것이 진우의 말을 듣고 천천히 간 덕분이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사진을 보내주며 진우가 "동영상도 찍었는데 보내줄까?" 하길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난 몰라.
좀 더 걸으니 멕시코시티의 꽃, 인류학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미 오전 내내 걸어 다녀서 지쳐있었지만 지칠 틈도 없이 인류학박물관의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어 넋을 놓고 돌아다녔다. 고대 유물 중에서도 이모티콘처럼 생긴 귀여운 애들이 많다. 참! 인류학 박물관은 2~3시간 코스로 짜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적어도 반나절, 되도록이면 하루 종일 일정을 잡는 게 좋겠다. 짧은 시간 내에 돌아다니려니 설명도 제대로 못읽고 훑기만 한 것 같다. 다음번에 멕시코에 가거든 이 박물관에는 꼭 하루를 다 투자할 거다. 그때는 스페인어 설명도 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에스파뇰을 구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돌아가는 길에 보조가방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테오티우아칸 갔을 때 너무 더워서 벗은 옷을 우겨 넣다가 그만 가방 앞 지퍼가 고장나 버렸다. 카메라, 지갑, 여권 등 온갖 중요한 것이 다 들어있는 보조가방의 지퍼가 열린 채로 야간 버스를 타는 행동은 위험하니까. 챠풀테벡 공원에 있는 노점상들을 돌아다니며 계속 협상을 했지만 절대 깎아주질 않는다. 90페소로 동일하다. 그때는 빨노초 줄무늬의 가방이 어찌나 사고 싶었는지. 남미 여행을 하는 내내 나와 함께 해서 정이 든 가방이다. 결국 90페소에 사긴 했는데, 가격을 조금 깎아보고자 진우가 이상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더니 노점상마다 가서 바디랭귀지로 이렇게 말했다. (진우는 스페인어를 단 한마디도 모른다.)
"이 친구의 가방이 고장 났어요.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 이걸 가지시고 저 가방을 70페소에 주실래요?"
이 말을 바디랭귀지로 완벽하게 구사한다. 웃긴 건,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는 활짝 웃으며 "No~"라고 한다는 것. 비록 에누리는 실패했지만 진우와 재밌는 일을 꾸몄으니 만족스럽다.
이 친구, 좋은 말을 해 주었다. 내가 계속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있으니 이제 새 가방은 뒤로 메라고 한다. 나는 털릴까 봐 무서워서 안 된다 그랬더니 캄보디아 여행 당시 모든 것을 털렸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뒤로는 가방에 아예 귀중품을 넣지 않고 지갑도 안 가지고 다닌단다. (이건 좀 오바인거 같긴 한데.) 그러니 여행할 때 어떤 상황이 와도 너무 당황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반드시 길은 있으니까. 일례로, 자기는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데 오늘 나를 만난 덕분에 이렇게 하루 종일 잘 돌아다니지 않았냐고 한다. 내가 가르쳐 준 것은 기껏해야 숫자와 "얼마예요?" 정도인데 말이다.
아쉬운 이별을 하고 나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퇴근시간대의 지옥철을 뚫느라 죽는 줄 알았다. 전역하고 바로 사서 1년 반은 갖고 다녔던 정든 가방과 헤어지자니 아쉬웠다. 바보같이 그 가방을 버리면서 작은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치약, 칫솔도 같이 버렸나 보다. 일기 쓰고 돈 정리 하다보니 시간이 잘 갔다. 7시쯤 도착해서 표를 샀는데 벌써 10시가 넘어간다. 1시간 후면 드디어 중남미 첫 야간 버스를 탄다. 일기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단체로 "악!!!" 소리를 질렀다. '아. 테러 난 건가? 난 이제 죽었다..' 생각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고 보니 축구 골 들어간 거였다.